더 이상 착하고 아름다운 인물들은 없다. 조선희 작가 소설의 주인공들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요괴, 신을 소재로 한 일본의 기담은 문화 전방위에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조선희 작가는 일상적인 금기, 잊고 살았던 전통의 면면을 더욱 자세하게 담아낸다. 호기심과 금기, 전통들은 면밀하게 엮어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이 시대의 미스터리 마스터의 새로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이 미처 못다 한 이야기의 자초지종,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동화 속 숨어 있는 또 다른 진실에서부터 출발한 소설이다. 작가는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만을 가져와 특유의 도발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전래동화를 전혀 새롭게 재해석했다.
대개의 전래동화는 나쁜 누구는 벌을 받고 착한 누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마무리로 일단 끝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야기만 거기서 끝이 날 뿐 그들은 계속 살았다. 만약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까지 계속된다면? 이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오소리 공주와의 하룻밤> - 토끼전
세상에는 무수하게 많은 금기들이 존재한다. 강육손의 아들 재준의 담임인 나는 재준의 실종 사건으로 육손을 찾아간다. 육손에게 재준의 간을 이식하기 전날이었다. 나는 재준의 딱한 가정사보다 육손에 대한 원망이 크다. 아비인 육손의 직무유기로 재준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재준이 오소리 가면을 쓰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고, 나는 발해국의 오소리 공주라 불린 강류를 떠올린다. 토끼의 간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결국 얻을 수 없던 별주부처럼, 막막한 갈망과 절망으로 이루어진 부자 관계를 독특하게 조명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