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착하고 아름다운 인물들은 없다. 조선희 작가 소설의 주인공들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요괴, 신을 소재로 한 일본의 기담은 문화 전방위에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조선희 작가는 일상적인 금기, 잊고 살았던 전통의 면면을 더욱 자세하게 담아낸다. 호기심과 금기, 전통들은 면밀하게 엮어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이 시대의 미스터리 마스터의 새로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이 미처 못다 한 이야기의 자초지종,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동화 속 숨어 있는 또 다른 진실에서부터 출발한 소설이다. 작가는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만을 가져와 특유의 도발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전래동화를 전혀 새롭게 재해석했다.
대개의 전래동화는 나쁜 누구는 벌을 받고 착한 누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마무리로 일단 끝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야기만 거기서 끝이 날 뿐 그들은 계속 살았다. 만약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까지 계속된다면? 이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전화> - 할미꽃 이야기
엄마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신애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미처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어느 날 집을 나간 후 헤어져 있던 엄마로부터 전화가 온다. “많이 보고 싶다, 내 새끼.” 신애는 엄마를 만나러 정주 가는 버스를 탄다. 가는 도중 버스가 고장 나 멈추고, 신애는 다음 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모두 죽은 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식들을 만나러 가다가 그대로 꽃이 되었다는 할미꽃 전설이 무색하게 현대의 어머니는 가족에게서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누가 알까, 엄마의 마음을. 할미꽃처럼 주름지고 멍이 든 것처럼 시퍼렇게 물든 보이지 않는 모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