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착하고 아름다운 인물들은 없다. 조선희 작가 소설의 주인공들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요괴, 신을 소재로 한 일본의 기담은 문화 전방위에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조선희 작가는 일상적인 금기, 잊고 살았던 전통의 면면을 더욱 자세하게 담아낸다. 호기심과 금기, 전통들은 면밀하게 엮어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이 시대의 미스터리 마스터의 새로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이 미처 못다 한 이야기의 자초지종,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동화 속 숨어 있는 또 다른 진실에서부터 출발한 소설이다. 작가는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만을 가져와 특유의 도발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전래동화를 전혀 새롭게 재해석했다.
대개의 전래동화는 나쁜 누구는 벌을 받고 착한 누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마무리로 일단 끝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야기만 거기서 끝이 날 뿐 그들은 계속 살았다. 만약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까지 계속된다면? 이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29년 후에 만나요> - 북두칠성과 단명소년
가가발과(가능한 가장 발전한 과학) 시대, 사람들은 수명 관리국에서 발급한 수명 카드를 신분증으로 들고 다니며 자신의 죽음을 가늠한다. 한어리와 두앙소는 같은 병원 같은 시각 태어나 평생을 친구로 살았지만, 삼년 후 죽을 앙소와 달리 어리는 앞으로 삼십 년 더 살 예정이다. 앙소는 수명 관리국을 찾아가 오류가 없는지 묻기로 결심하고 어리와 길을 떠난다. 죽음이 유예된 백세시대, 인간의 수명과 삶에 대한 강력하고 신비로운 은유가 예측할 수 없는 장면들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