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착하고 아름다운 인물들은 없다. 조선희 작가 소설의 주인공들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요괴, 신을 소재로 한 일본의 기담은 문화 전방위에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조선희 작가는 일상적인 금기, 잊고 살았던 전통의 면면을 더욱 자세하게 담아낸다. 호기심과 금기, 전통들은 면밀하게 엮어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이 시대의 미스터리 마스터의 새로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이 미처 못다 한 이야기의 자초지종,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동화 속 숨어 있는 또 다른 진실에서부터 출발한 소설이다. 작가는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만을 가져와 특유의 도발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전래동화를 전혀 새롭게 재해석했다.
대개의 전래동화는 나쁜 누구는 벌을 받고 착한 누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마무리로 일단 끝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야기만 거기서 끝이 날 뿐 그들은 계속 살았다. 만약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까지 계속된다면? 이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죽이거나 살리거나> - 선녀와 나무꾼
강주와 경두 부부는 결혼한 지 5년이 되었지만 아이가 없다. 어느 날 그들이 사는 아파트 위층에서 소년이 떨어져 죽는다. 소년은 처음 보는 옷을 입고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졌다. 소년의 할머니는 강주에게 아이가 입고 있던 옷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상하게도 화장을 했는데도 옷이 타지 않았다고 말하는 할머니. 그날 이후 밤마다 한 아이가 찾아와 경두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아내에게는 들리지 않고 오직 경두만 듣는다. 그러던 어느 날, 기쁜 소식을 알리는 전화와 나쁜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동시에 받는 경두. 그날 이후 아이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경두는 아내가 무심코 받았던 옷과 자신을 찾아오던 아이, 그리고 아내가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