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착하고 아름다운 인물들은 없다. 조선희 작가 소설의 주인공들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요괴, 신을 소재로 한 일본의 기담은 문화 전방위에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조선희 작가는 일상적인 금기, 잊고 살았던 전통의 면면을 더욱 자세하게 담아낸다. 호기심과 금기, 전통들은 면밀하게 엮어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이 시대의 미스터리 마스터의 새로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이 미처 못다 한 이야기의 자초지종,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동화 속 숨어 있는 또 다른 진실에서부터 출발한 소설이다. 작가는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만을 가져와 특유의 도발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전래동화를 전혀 새롭게 재해석했다.
대개의 전래동화는 나쁜 누구는 벌을 받고 착한 누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마무리로 일단 끝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야기만 거기서 끝이 날 뿐 그들은 계속 살았다. 만약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까지 계속된다면? 이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지팡이> - 십 년간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마루는 자신의 오른팔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십 년이나 늙어있다. 팔 한쪽이 없지만 오래 전 아문 듯이 출혈도 감염도 없다. 솜씨 나쁜 의사에게 수술이라도 받았는지 봉합 상태 또한 엉망이다. 사고도 수술도 기억에 없는 일. 직장에서는 못 보던 신입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고, 무엇보다 지난 일 년 간 무단결근으로 해고처리가 되어있다는 사실에 기함한다. 마루는 자신의 오른팔에 있던 상처를 기억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마루와 함께 있던 친구 ‘모테’를 찾아가는 마루. 그날, 모테와 함께 갔던 중고품센터를 찾은 마루는 가게 주인과 지팡이를 보는 순간 무언가 떠올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