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고 농후한 여름을 기다릴 때에 우리 앞에 겨울이 나타나면, 우리는 저퍼하지 않을 수 없다. 비빔밥같이 농후한 사랑에서 외로움의 세계로 쫓겨난 이같이 불행한 이가 다시 없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극도의 저픔과 외로움과 슬픔을 맛 본 사람이다. 그와 같은 뜻으로 끝까지 돈을 즐기던 향락주의자가, 재산이라는 왕국에서 쫓겨날 때에 받는 불행과 슬픔도 적지 않은 것이다. 따뜻하고 가볍던 옷을 생각하고, 맛있던 좋은 음식과 좋은 담배를 생각하며, 사고 싶은 수없는 물건을 생각하며, 아직 늙어죽기까지에 남아있는 햇수를 비교할 때에 그는 자살할 용기가 없는 자기를 비웃지 않고는 두지 않게까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나도 그 불행한 사람의 하나이라고 안할 수 없다. 많지는 못하였으나 내 일생에는 풍족하던 재산은 몇 해 동안의 끝 모르는 방랑에 볼 나위 없이 줄어지고 말았다. 큰 땅은 팔리어 적은 땅이 되고, 적은 땅은 팔리어 빚 때문에 나가고, 이리하여 마침내 나에게는 가장 신성하던 저택까지 인제는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평양 성내에 주택지로는 한 군데밖에 없는 곳에 사백여 평을 점령하고 있던 그 커다란 저택. 아버지가 짓고, 내가 자라고, 결혼하고, 내게는 가장 보배인 한 아들과 한 딸을 얻은 그 집도 ‘공연히 커다란 집을 쓰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체재 좋은 핑계 아래 영구히 내 손에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