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을 접어들면서 우제는 아버지가 자기를 더욱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다. 믿지는 않으면서도 그래도 전에 같으면 가다가 한 번씩이라도 가사에 관한 의논은 있을 것이 일체 없어진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좀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라는 인간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로 여긴다는 말도 되는 것이라, 아니 이렇게까지 자기를 천단해 버린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울꼬 생각할 때 우제의 마음은 앞뒤가 꼭 막힌 듯이 답답했다.
아버지가 자기를 이심으로 밉게 보아서 그런다면 반감이나 생길 것이, 그렇다면 마음이나 오히려 편안할는지도 모를 것인데, 사랑은 하면서도 아니 사랑하길래 큰 소리 한마디 없이 아들이 없는 줄 아자꾸나 하고 인제는 아예 의논을 말려는 것인 줄은 아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본시 성질이 남달리 뚝하여 아들에게도 말 한마디를 곰살갑게 하여본 일이 없는 아버지였건만 자기를 누구보다도 알뜰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우제가 모르는 배 아니었다. 오륙 식구를 거느리고 오십이 넘은 아버지가 혼자 이것들을 벌어먹이기에 사철 다리를 부르걷고 진날 마른날 없이 감탕 속에 무젖어나며 농사를 짓기가 오죽 힘들련만 모 한 대같이 꽂아 주기는커녕 섬대가리 한번 맞들어 주지 않고 남의 일같이 눈 한번 거들떠보는 법 없이 밤낮 손 싸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으로 씨름을 하는 것이 아니면 하릴없이 뒷짐이나 지고 산등성이나 거니는 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이었건만 이렇다 쓴소리 한마디 아니하던 그 아버지였다.
사실, 그 아버지 자신도 우제가 삼십이 되도록 책이 아니면 붓대나 들고 고이 놀리던 손끝으로 일(농사)을 하리라고는 애초에 믿지부터 않았다. 공부를 하였거니 취직을 한다든지 무엇이나 한 자리 해서 돈 벌이를 하여 집안 식구를 먹여살릴 것이겠거니, 그리하여 어떻게 찌그러져 가는 가정을 바로 세워 놓았으면 하는 생각은 은근히 있어 왔다. 이것은 우제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