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놈-.”
“금년에 들어서도 벌써 네 명짼가 보오이다.”
“그런 모양이다. 하하하하.”
용마루가 더릉더릉 울리는 우렁찬 웃음소리였다.
“어리석은 놈들. 무얼하러 온담.”
저편 행길에 활을 맞아 죽은 사람들, 누각에서 내려다 보며 호활하게 웃는 인물. 비록 호활한 웃음을 웃는다 하나, 그 뒤에는 어디인지 모를 적적미가 감추여 있었다. 칠십이 가까운 듯하나 그 안색의 붉고 윤택 있는 점으로든지, 자세의 바른 점으로든지, 음성의 우렁찬 점으로든지, 아직 젊은이를 능가할 만한 기운이 넉넉하여 보였다.
“인제도 또 문안사(問安使)가 오리이까?”
“또 오겠지. 옥새(玉璽)가 내 손에 있는 동안은, 연달아 오겠지.”
“문안사들이 가련하옵니다.”
“할 수 없지.”
함흥 본궁에 돌아와 계신, 이씨 조선의 건국자이신 태조 이성계. 지금의 위계로는 태상왕(太上王)이시었다.
태상왕께서 당신의(생존한) 맏아드님 방과(芳果-정종대왕)께 왕위를 물려드리고, 이 함흥 본궁으로 오신 지도 이미 수개 년. 그때 위를 받으셨던 정종대왕도 이미 퇴위하시고, 태상왕께는 다섯째 아드님이요 정종대왕(인젠 상왕)께는 아우님이 되시는 방원(芳遠)이 등극하신 지도 또한 몇 해가 지났다.
함흥 본궁에 한거해 계시고 인젠 세상 잡무는 모르신다- 표면에 이렇게 되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의 사정이 있었다.
서울 왕에게서 함흥 계신 태상왕께 문안사가 오면, 태상왕은 만나 보시지 않고 오는 문안사마다 모두 멀리서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이전 고려조에 신사(臣仕)할 때부터 명궁(名弓)의 이름이 높던 태상왕의 살은, 벌써 수십 명의 왕사를 만나지도 않고 죽여 버렸다.
옥새라 하는 것은 당연히 왕이 가지셔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태상왕은 당신의 손으로 아직도 옥새를 맡아 가지고 계시고 아드님께 물려드리지를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