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가는 산길에 발이 익은 산지기가 유리등을 들고 앞을 섰다. 그 뒤에는 그 동리에서 장사 지내는 데에 가장 경험이 많다는 늙은 농부와 총각 한 사람이 따랐다. 그리고 창수는 맨 뒤에서 희미한 등불을 의지하여 길을 찾아 걸어갔다. 사면은 고요하였다. 이따금 불어가는 바람결에 소나무는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쇄 ─ 쇄 ─ 울리어 온다. 소나무 사이로는 신작로 주막거리의 등불이 꺼질 듯 말 듯 껌벅거리어 보였다. 솔밭에 잠들은 밤새들은 여러 사람의 발자취 소리와 등불 빛에 잠을 깨인 것처럼 가끔가다가 푸덕거리었다. 바람이 움직일 때마다 흙냄새와 송진의 쌉쌀한 냄새가 창수의 날카로운 후각을 찌른다. 그는 힘없는 다리로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걸어갔다. 돌멩이와 나무뿌리에 그의 발은 몇 번이나 걷어차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거꾸러질 듯하였다. 소나무 잎보다도 더 검고 캄캄한 하늘이 약간 깜박거리는 별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그들은 얼마 아니 되어 묘 있는 넓은 곳으로 나왔다. 앞이 환하게 트이고, 뒤에 약간 송추가 늘어선 두리뻥뻥하게 뚫린 벌 한가운데는 여러 해 손을 대이지 아니한 납작한 봉분이 우뚝하게 보였다.
여러 사람은 메고 온 괭이와 가래 같은 땅 파는 기구를 묘 앞 잔디밭 위에 부려놓고 후 ─ 하고 차오르는 가쁜 숨을 내쉰 뒤에 등불을 에워싸고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창수는 뒷짐을 끼고 이리로 저리로 머리를 수그리고 걸어 다녔다. 그의 다리에는 힘이 더욱 풀어졌다. 그는 묫동 뒤에 가서 혼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아! 나는 나의 일시의 곤란을 면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아니다, 죽을 때에 넣어준 약간의 금이나 은을 도로 빼앗아서 가기 위하여 풍수의 화복설을 진실로 믿는 것처럼 꾸미어 가지고 애처의 유해를 가장 위하는 것같이 아닌 밤중에 여러 사람을 속이어 데리고 와서 그의 시체 위에 괭이와 가래질을 하게 되었다. 아! 나로 하여금, 수천 금의 많은 돈도 사랑하던 처를 위하여서는 아끼지 않은 나로 하여금, 고양이 새끼라도 그것이 죽은 송장이라면 얼굴을 다른 편으로 두르고 보기를 두려워하던 나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게 한 것은 그 무엇이랴? 양심을 이만큼 마비하게 한 것은 무엇이냐?’
그는 이러한 일을 엄두에 내어 가지고 여기까지 오게 된 자기란 것이 스스로 무서웠다. 이러한 일도 꺼리지 않고 넉넉히 하게 된 자기로써 이보다도 더 무서운 일을 다시 아니하리라고 누가 보증할까? 아, 무서운 일이다.
묘 파는 일만은 그만두자. 사랑하던 아내의 유해 위에 괭이질하는 일만은 그만두자! 그는 여러 사람에게 묘 파는 일은 그만두고 돌아가자고 입을 떼어볼까 하였다. 그는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