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생원(孫生員)은 난생 처음 어려운 길을 걷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난지 이미 열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강원도(江原道)땅을 벗어 나지 못하였다. 뜨거운 염천이라 한 낮에 걷는 거리란 불과 몇 십리에 지나지 못하는데다가 나날이 기진역진 하여 가는 것이 현저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더구나 길이 험하고 자갈 많은 강원도 산 길은 그에게 여간 고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노수가 아직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장돌림말을 만나면 사정을 간곡히 이야기하고 술값으로 얼마를 주기로 하고 얻어 탄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엽전 한푼 남아 있지 않게 된 후로는 그것도 할 수 없어서 오로지 과객질을 하여 가며 길을 걸었다.
그것도 상당히 사는 사람의 집을 찾아 들어 가게 되거나 사랑 한 칸이라도 지니고 사는 사람의 집을 만나게 되면 대접도 상당히 받을 뿐 아니라 짚신 값이라도 얻어 가지고 나오게 되지마는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러한 집을 찾지 못하고 날이 저무는 때는 그야말로 노찬풍숙을 하는 고생 몇 차례나 하였다.
그럴 때마다,
『예끼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인고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급기 함흥에 갔다가도 여의치 못하면 그런 놈의 고생이 더 어디 있을꼬.』
하고 곧 돌아서서 서울로 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눈 앞에 떠 오르는 것은 굶주리어 부황이 나다시피 한 늙은 아내의 얼굴이며 밥을 달라고 울며 불며 하는 자식들의 참상이었다.
손생원은 가기 싫은 길을 강잉하여 희양(淮陽)땅으로 들어 섰다.
돈 있고 여가 있는 사람 같으면 금강산 구경도 하고 온정에서 묵은 때를 씻어버리기라도 하련마는 그럴 여유가 없는 손 생원은 희양읍을 이십리 앞둔 어느 촌에서 하룻밤을 드새게 되었다.
읍내까지 겨우 이십리 밖에 아니되니 그대로 걸어서 읍내로 들어가려도 못 갈 것은 아니련마는 읍내로 들어간들 환영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촌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십여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사는 부호 한 집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과객질하자는 것이었다.
그 집은 홍승복(洪承復)이란 사람의 집으로 분명히 원근에 떨친 사람이지마는 인색하고 교만하기 짝이 없어 과객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만나보긴 고사하고 객청 하나를 지어 놓고 여간한 사람은 그리로 몰아 넣고 개다리 소반에다가 보리밥 한 그릇을 대접해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손생원은 부근 사람들이 이 근처에서 하룻밤을 드새고 가려면 홍 영감댁 밖에 없소 하는 소리를 곧이 듣고 찾아 들어갔던 것이었다.
홍 영감집 하인은 손생원의 의표를 한번 훑어 보고는
『이리 들어 앉으슈.』
하고 객청에다가 몰아 넣었다. 벽은 흙벽이고 방바닥은 지직이다.
더구나 그 방에는 먼저 들어와 앉은 손 하나가 있었다.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