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동강 동쪽 해안을 이 리쯤 들어가면 새마을이라는 동리가 있다. 그 동리는 그리 작지는 않다. 그리고 동리의 인물이든지 가옥이 결코 비루하지도 않으며 업은 대개 농사다. 이 동리에는‘범네’라 하는 꽃인가 의심할 만하게 몹시 어여쁘고 범이라는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온순한 팔구 세의 소녀가 있다. 그 소녀가 이 동리로 온 것은 두어 해 전이니 황진사라는 육십여 세 되는 젊지 않은 백발옹과 어디로선지 표연히 이사하여 거한다. 그 후 몇 달을 지나서 범네의 집에는 삼십 세 가량 된 여인이 왔으나 역시 타향인이었다. 하는 일은 없으나 생활은 흡족한 듯이 보이며 내객이라고는 일 년에 한 번도 없고 동리 사람들과 사귀지도 않는다. 그런 고로 이 동리에는 이 범네의 집안 일이 한 의심거리가 되어 하절 장마 때와 동절기인 밤에 담뱃 때들 사이의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