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사망 따위의 허섭쓰레기나마 여남은 장을 써야만 그날 하루의 생활이 유지되는 셈인데 세시가 지나도록 개미새끼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쥐꼬리만하다는 겨울 해가 세시를 지났으니 장도 파장이 다 되어갈 무렵이다.
“빌어먹을 자식들… 밥 처먹군 뭘하길래 애새끼들두 못 맨드누… 뭬 또 그리 재미가 깨 쏟아지듯 한다구 다 뒈질 생각은 않으며…”
헌 신문지쪽에다 사법 대서 김달영이란 똑같은 글자를 몇 십 몇 백으로 쓰고만 있노라니 부아가 슬며시 돋는다. 무슨 날에도 이런 일이 없었거든 황차 오늘은 장날이 아니냐. 그것도 명색이 읍으로 승격을 한 첫 장이란 게 이 꼬락서니다.
“읍 ─ 경을 치래라!”
붓장난하던 연필로 신문지를 벅 그어대니 찍 찢어진다. 지금 심사 같아서는 뭣이고 눈에 뜨이는 대로 모조리 바수어대고 싶다. 책상이고 서류궤고 사진들, 꽃병 ─ 아니 그럴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의 목덜미를 잡아서 한길에 개구리처럼 태기를 치고 싶어진다. 울화 치미는 대로 하면 문 첩첩이 닫아치우고 어디 가서 술이나 고주망태가 되게 들부어대고, 심사 틀린 놈들하고 염병을 한번 부렸으면 비위가 가라앉을 것 같으나 권세와 세도가 한꺼번에 뚝 떨어졌고 보니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자기한테 술턱을 낼 리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제 돈 들여서 술을 먹기도 싫다. 홧김에 서방질두 한다는데 뭐 번듯이 자빠져서 이런 생각을 하고 주머니 속 돈과 자기 주량을 견주어보기도 하다가는 성난다고 돌부리를 차면 나만 앵하지 하고 고개를 흔들어댄다.
“더러운 놈의 자식!”
터질 구멍을 찾지 못한 울분은 또 딴 데로 튄다.
“주었던 것 도로 달라면 똥구멍에 종기 난다는데 그 자식 나이 사십이 다된 자식이 한번 준 것을 도로 내래? 더러운 자식 같으니. 줄 땐 무슨 맘이구 이제 와 또 도루 달라는 건 다 뭐야.”
왜정 때 순사를 다니던 강창복의 말이다.
“세상인심이 다 그렇다군 하지만서두 사내자식이 체통이 있어야잖아? 그놈이나 고년이나…”
울분은 또 딴데로 튄다. 놈이란 강창복이지만 년이란 것도 강가와 좋아지내는 삼일병원 간호부 조경애다.
“쥐길 년놈들! 년놈들끼리 또 뭬라구들 했기에 그 자식이 사람을 보냈겠지!”
온종일 출생신고 한 장 못 쓰고 있는 판에 문이 드르륵 열리며 양곡조합 사환아이가 강창복이의 편지를 가지고 온 것이다. 해방 직후 순사도 그만두고 해서 쓸모도 없고 하니 가지라고 제 손으로 갖다준 가죽장화를 도로 보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제 것도 아니고 사법주임으로 있던 일인 경부보가 주고 간 것이라고 하며 자기한테는 인제 개발에 편자나 진배없다고 떠맡기듯 한 것인데 도로 내란 것은 도시 말이 되지 않는다. 인제 언제 한번 신어볼지도 모르는 ─ 아니 어쩌면 영영 그런 것을 신고 뽐낼 계제가 다시 와볼 것 같지도 않은 가죽장화니 자기야말로 인제 정말 개발에 편자 격인지라 아까운 생각은 손톱 반푼어치도 없지마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하는 강가의 소행머리가 괘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지금 어디 처박혔는지 모른다고 퉁명스럽게 아이를 돌려보내고 나서 생각하니 그 강가놈한테 또 한번 진 것 같아서 도시 비위가 가라앉지를 않는 것이다. 그 자식이 가죽장화 하날 무슨 큰 보물인 줄 알구서 안 내놓지 ─ 이렇게 놈과 년이 주고받을 생각을 하면 더욱 역심이 난다.
“더러운 놈의 세상 또 한번 뒤집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