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일
아침 여섯시에 기상. 제법 산산하다. 일어나는 길로 우물로 가다. 우물을 친 지가 여러 날 되어서 파란 이끼가 서리어 있다.
얀정없이 샛노란 감나무잎이 두 잎새 물 위에 동동. 헤식은 밤나무 단풍 한 잎이 저도 단풍이로라 감나무잎 사이로 매식매식 돌아다닌다.
우물 둥천 이맛돌에 놓인 바가지 조각으로 물을 휘휘 저어 한 모금 마시다. 잔입이라 그런지 물맛이 곧 달다. 되거퍼 한 모금. 웬일인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고추밭머리를 돌아서 방울방울 열린 이슬을 차고 골짜기를 건너막은 밤나무 다리를 건너 산기슭에 오르다. 안개낀 때처럼 목안이 칼칼하다.
동산에 오르니 펀한 들. 모닥모닥 한줌씩 집어다 놓은 것 같은 조그만 산들이 잔솔을 덮고 요기도 하나, 조기도 하나. 으레 그 산밑에는 초가가 네다섯 집. 어쩌다 많은 곳이라야 여남은 채. 그러나 한 집, 두 집, 산당처럼 선 곳도 또한 여러 군데다.
산 아래 뫼. 뫼 앞에 농가. 농가 둘레로는 빠알갛게 불붙는 감나무가 그 이글이글한 횃불을 아직 이슬에 촉촉히 젖은 대공을 향하여 쏘고 있다. 나직한 산기슭에 불덩이 같은 단풍인가…
삐―ㄱ!
기다란 흰 연기가 널따란 들판을 가로지른다. 여섯시 봉천행인가. 누이가 나간 지 십오분. 오늘은 지각이 아닐까?
스스로 창안한 아침 체조를 한 십분. 하얀 사기 대야에 세숫물을 찰찰 넘게 떠놓고, 언제 보아도 고운 감나무잎에 소금을 한줌 갖다놓고, 세숫물 속에 얼른거리는 야윈 얼굴을 들여다보고 앉았으려니, 우물터 위 동산 망주석에 까치 한 마리가‘깍깍깍’손을 부른다. 전하는 말에, 까치는 손이 옴을 알린다고―누가 이 산속을 찾아오려나?… 아무라도 좋으니 오기만 한다면… 소식 채갱이나마 다정히 마주앉아 하루를 즐기련만…
오후에 고개 너머 서 군이 찾아오다. 이십대 청년에게 장죽이 격에 안 맞는다. 그런 말을 하니 서 군은 오직 웃을 뿐.
“허허, 모르는 소리니, 짚단을 깔고 앉아서 세상만사를 모두 잊고 뻑뻑 빠는 맛이야 말로 신선 부럽지 않으니…”
모를러라.―된 현실 앞에 눈을 감음이 그 신선이 될지…
서, 흡, 나― 이렇게 셋이 수수밭과 콩밭 샛길을 타고 산기슭에 허리를 폈다. 우물 오른편 쪽 동백나무와 대추나무 사이로 쑥 들여다보이는 도독하고도 편편한 지점을 장죽으로 톡톡 두드리며,
“자네도 여기다 집이나 한 칸 세우게.”
하고 서가 권하는 말이다. 조그마한 여유가 있대도 초가삼간라도 세우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