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선왕(忠宣王)은 이날 밤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번민에 싸이셨다.
넓은 침전 화려한 침구 잠자리가 편찮음도 아니다. 짧은 여름의 밤이니 물론 지루하실 리도 없었다. 바로 곁에는 오늘 한 밤 특히 왕을 모시게 된 명예의 미희가 아름다운 쌍겹눈을 반쯤 내려 감고 왕의 입에서 어떤 분부가 내리기만 고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벌써 몇 달을 두고두고 이렇듯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왕에게는 즐거운 침실도 아름다운 시비도 모두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면 왕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시는 것일가?
원 나라에 남겨 두고 오신 정인!
왕이 석달 전 귀국하시기까지 원 나라에 계시는 오랜 동안에 그렇듯 서로 아끼고 사모하던 그 여인을 못 잊어 하심이었다.
고려로 돌아오시던 그 전야, 원나라 궁성 고전(高殿) 뒤꼍에서 떨어지는 달그림자를 바라보며 이별을 설어하던 그 날 밤은 삼월달이었지만 북국의 밤바람은 퍽 쌀쌀하였다.
『어디든지 따라 가겠나이다.』
하며 왕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울던 애인을 생각하자, 왕은 이미 고려 궁실 지존의 자리에 있는 몸으로 더욱 잠을 못 이루시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면 데리고 올걸!』
하고 왕은 자리 위에 일어나 앉았다.
반쯤 눈을 감고 어슴푸레 가수상태(假睡狀態)에 잠겼던 미희가 놀라 일어나 머리를 읍하였다.
『염려 말고 저리로 누워 자라.』
왕은 부드럽게 한편 자리를 가리키고는 드륵 창을 열어 젖히었다.
보름 지난 달은 파란 빛을 왕의 얼굴과 몸에 던지며 점점 서쪽으로 기울어 져갔다.
『허 그날도 달은 밝았지!』
왕의 머리 속에는 또 그리운 추억이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잇대어 퍼져갔다. 백 번 천 번 하여도 또 잊을 수 없는 회상의 가지가지, 왕은 달을 쳐다보며 한숨만 지었다.
『자기도 그렇게 오고 싶어 하던 것을 데리고 올걸.』
왕은 다시 한 번 후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