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었던 봄빛도 차차 사라지고 꽃 아래서 돋아나는 푸르른 새 움이 온 벌을 장식하는 첫 여름이었다.
옥저(沃沮)땅 넓은 벌에도 첫 여름의 빛은 완연히 이르렀다. 날아드는 나비, 노래하는 벌레……
── 만물은 장차 오려는 성하(盛夏)를 맞기에 분주하였다.
이 벌판 곱게 돋은 잔디 밭에 한 소년이 딩굴고 있다. 그 옷 차림으로 보든지 또는 얼굴 모양으로 보든지 고귀한 집 도령이 분명한데 한 사람의 하인도 데리지 않고 홀로히 이 벌판에서 딩굴고 있다.
일없는 한가한 시간을 벌판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보내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때때로 벌떡 일어나서는 동편쪽 행길을 멀리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그러다가는 다시 누워 딩굴고 하는 품이 동쪽 행길에 장차 나타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러기를 한나절, 첫 여름의 긴 해도 좀 서쪽으로 기운 듯한 때에 이 소년은 또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소년은 비로소 빙긋 웃었다. 그리고 빨리 일어나서 좀 이편 쪽에 있는 수풀에 몸을 숨겼다. 거기는 이 소년의 승마(乘馬)인 듯한 수안장의 백마가 한 마리 소년을 가다리고 있었다.
이 소년이 들풀에 몸을 숨기자 저편 행길에서는 완연히 인마의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차차 커지면서 행길에는 한 행차가 나타났다.
낙랑(樂浪) 추장 최리(崔理)란 노부였다. 문무대신의 시위를 받으며 최리의 수레가 지금 대궐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소년은 잠시 그 수레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동안 소년의 얼굴에는 차차 긴장미가 돌았다. 소년은 문득 허리를 굽혀서 한개 돌맹이를 집었다. 다음 순간 그 돌맹이는 소리를 내며 날았다 소년의 겨냥은 틀리지 않았다. 소년의 손을 떠난 돌은 낙랑 추장 최리의 수레를 끌던 말의 뒷다리에 가 맞았다.
다리에 날쌘 돌을 맞은 말은 한번 껑충 뛰었다가 전 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추장의 권력으로 구하여 들였던 명마가 힘을 다하여 달아나는지라 그 속력은 놀라웠다. 이 의외의 사변에 시위하였던 문무대신들이 놀라서 추장의 수레를 붙들고자 뒤를 따랐으나 그들의 말이 수레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옥저 넓은 벌 동쪽 끝에서 돌을 맞은 말은 그 넓은 벌을 무방향하여 막 달아났다. 수레 위의 최리는 비명을 올리며 구원을 청했으나 각 일각 대신들의 말과의 거리는 더 멀어갈 뿐이었다.
소년은 잠시 미소하면서 이 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최리의 수레가 꽤 멀리 간 뒤에야 비로소 거기에 매어 두었던 자기 말의 고삐를 풀고 말등에 올라 앉았다.
『백룡(白龍)아 어디 네 발을 시험해 볼가?』
말등에 올라앉아서 갈기를 한번 두들기고 소년은 숲에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