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경문왕 말년.
곳은 상주 가은현(尙州 加恩縣)의 어느 한적한 촌락이다.
그 촌락을 뒤로 장식하고 있는 작다란 언덕에 드문드문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소나무 틈틈이로는 이끼 낀 바위가 비죽이 보이고 있다.
그 어떤 바위에 한 농군(農軍)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농군의 곁에는 그의 아들인 듯한 열아믄살쯤 난 소년이 앉아 있다.
『그래서요.』
지금껏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중도에 끊었던지 소년은 자기의 아버지를 향하여 이야기의 뒤를 채근한다. 이 채근을 받은 아버지는 잠시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다시 말을 꺼내인다.
『그래서 말이로다.』
그래서 신라는 우리 백제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구나. 너무도 백제가 강하고 그 위에 연방 신라 각 고을이며 성을 빼앗으니까 잔뜩 백제에게 원한을 품었구나.
그렇지만 신라는 우리 백제보다 힘이 약하니까 아무리 원한을 품었지만 할 수 없지 않겠느냐. 원수를 갑자기 원수를 갚을 만한 힘이 있어야지. 그래서 속이 끓는 것을 그냥 참았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우리나라 임금이 되시는 의자왕(義慈王)께서는 ─.
이러한 실머리로써 그 농군이 자기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백제 망국의 이야기였다.
백제의 최후의 임금인 의자왕이 차차 나라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만 잠기기 때문에 한때 강성하였던 백제가 차차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신라에서는 백제에 대한 옛날 원한을 풀기 위하여 극력으로 양병을 하고 또한 당나라에 빌붙기까지 하여 당나라의 세력까지 매수하였다.
이리하여 의자왕의 난정 때문에 백제는 나날이 약하여지고 신라는 그 반대로 차차 강하게 되어 나당(羅唐)연합군의 백제 정벌이 벌어지게 되고 백제라는 七[칠]백년 사직은 나당 연합군에 깨어져 나가고, 백제의 수천 궁녀는 낙화암에서 강으로 떨어져 죽고 의지왕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잡혀서 당나라 서울로 가서 거기서 외로운 최후를 보았다는 백제 망국의 사연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