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야기가 끊기고.
모본단 보료를 깐 아랫목 문갑 앞으로, 사방침에 비스듬히 팔꿈치를 괴고 앉아서 주인 박(朴)주사는 펼쳐 든 조간신문을 제목을 훑는다.
잠잠한 채 방안은 쌍미닫이의, 납을 먹여 마노빛으로 연한 영창지가 화안 하니 아침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밝고 쇄려하다.
주인 박주사는 방이 밝고 쇄려하듯이 사람도 또한 정갈하고 호사스런 의표와 더불어 신수가 두루 번화하다. 기름을 알맞추, 반듯이 왼편에서 갈라 빗은 짤막한 머리가 우선 단정하다. 마악 아침 소쇄를 하고 난 얼굴이 부윳이 희고 좋은 화색이다. 마흔여섯이라지만 갓 마흔에서 한두 살이 넘었다고 해도 곧이가 들리겠다. 코 밑으로 곱게 다듬어 세운 가뭇한 코밑수염이 한결 그러해 보인다. 아래턱은 면도 자죽만 푸르고 마고자도 조끼도 민으로 은회색 공단이다. 저고리와 바지는 삼팔. 두둑한 솜버선에 대님은 그것도 은회색이다.
갖추 이렇게 화려 선명하고 어둔 그늘이 없다.
방안을 차린 범절은 그러나 판연히 대조가 되는 두 갈래로 낡은 것과 새로 운 것이(의좋게) 함께 있곤 하여, 그래서 언뜻 보매 심히 동떨어지고 어색한 느낌이 없지가 못하다. 가령 윗목으로 친 팔폭 병풍은 추사의 대가 분명한데, 반만 접은 그 병풍 뒤로 크막하니 섰는 책장에는 한세대 전의 법학생들이 교과서 혹은 참고서로 쓰던 여러 가지 법학서적이 가득 들여쌓여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금자박이의 양서까지도 서너 권 섞여 있고. 그리고 더욱 진기하기는 저 주천백촌의 ‘유명하던’ 『연애지상주의』이것을 비롯하여 하목수석의 『나는 고양이로다(我輩は猫てある)』니, 하천풍언의 『사선을 넘어서니』니 승서몽 번역의 신조사판인 톨스토이의 『부활』이니 하는 문학 서적과 몇 권씩의 《학지광》이며 《개벽》 등 옛 잡지를 곁들인 것이다.
무릇 솜버선 마고자에, 책상 대신 연상(硯床)과 문갑을, 문갑 위에는 몇 종류의 한서가 놓였고, 안락의자가 아니라 사방침에 기대앉아서 퇴색한 추사의 대를 즐기며 심심파적 삼아 한문 고전낱도 뒤적이고 하는 고풍의 중년 신사 박주사에게는 그러므로, 세계를 달리한 듯싶은 이 장서 들이었지만, 그러나 일변 그가 항용 출입을 할 적이면 자못 화사한 넥타이에다가 과히 유행에 뒤지지 않는 양복을 차리고 나선다는 사실을 참작할진댄 그러한 부조화도 저윽이 덜 무안할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시 그가 약 이십여 년 저 짝, 비록 전문부요, 이년쯤 하다가 중도폐지는 했을망정 XX 대학에 학적을 둔 적이 있는 동경유학생의 한 사람이었다는 경력을 고려한다면 그 부조화는 상당히 존재의 이유를 주장한달 수가 있을 것이다. (책상을, 맨 밑의 서랍을 뒤져본다치면 무수히 블랭크가 치여, 문맥이야 닿지 않으나마 『법학총론』이니 『민법원론』이니 등속의 필기 노트가 꽤 여러 벌 들어 있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