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강변으로 장작이든 무얼 좀 살까 하고 나갔다가 허행을 하였다.
강에는 많은 뗏목이 내려와 밀렸고, 일변 뜯어 올려다 쌓고 하였다. 강언덕은 온통 뗏목 뜯어 쌓은 걸로 묻히다시피 하였다.
장작도 마침 큰 배로 두 배나 들어와서 한편으로 푸면서, 한편으로 달구지에다 바리바리 실으면서 하고 있었다.
뱃장작을 도거리로 산 당자인 듯, 자가사리수염에 마고자짜리가 이럭저럭 분주히 납뛰고 있어
“장작 좀 살 수 있을까요?”
하였더니, 선뜻
“네, 몇 차나 쓰시렵쇼?”
하면서 굽실한다.
시재라야 이십 원밖에 없었다. 그중 십 원은 가용을 써야 하고, 십 원으로 장작이면 한 오십 관, 솔가지 같으면 한 삼십 단 살 요량이었는데, 더럭 몇 ‘차’냔 소리에 그만 오갈이 들어, 오십 관 말은 차마 못 내고 “한, 백 관만……”
하기를, 그나마도 무서무서히 하였다.
“배액 관입쇼?”
자가사리수염은 아니나다를까, 잔뜩 그렇게 시뻐하면서, 이 근친스런 나그네를 위아래로 한 번 씻어보더니
“그런 장거린 드릴 수 없음다……”
하는, 말보다 먼저 저리로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다. 공으로 나무를 얻으러왔다가 거절이나 당한 것처럼, 얼굴이 화틋 달고 무렴하였다.
뗏목은, 뜯어쌓은 지가 오랜 걸로, 잘 말라서, 켜가지고 빠개기만 하면 곧 땜즉한 것도 무더기 무더기 많이 쌓여있었으나, 장작을 백 관 따위는 잔거리라서 팔지 않는다는데, 황차 뗏목이리요. 물어보기조차 부질없는 노릇, 이내 발길을 돌이키고 말았다. - 그러고서 돌아와 하릴없이, 헌 궤짝을 쭈그리고 않아 부서뜨리고 있자니, 심사 자못 울적치 아니치 못하였다.
이사할 때 잔 세간을 넣어가지고 온 희연 궤짝 두개다. 두 개를 죄다 부서뜨렸자 하루 뗄 나무가 될까말까한 것이 소리만 동네가 떠나가게 요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