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 마루에서 시뻘건 해가 두렷이 솟아오른다. 들 위로 얕게 덮인 아침안개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누른 볏목들이 일제히 읍을 한다.
약오른 풀끝에 맺은 잔이슬들이 분주히 반짝거린다. 꼴을 먹는 소 목에서는 끊이지 않고 요령이 흔들린다.
쇠고삐를 잡고 앉아 명상에 잠겼던 견우는 걷어올린 맨 다리를
“딱.”
때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쇠파리가 침을 준 것이다.
“아니 오나?”
견우는 혼자 중얼거리면 동리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한다.
××의 비단 짜는 직공으로 뽑히어 늘 새벽차에 떠난다는 직녀를 다만 먼빛으로라도 한번 바라보려고 견우는 첫새벽부터 소를 끌고 나와 꼴을 먹이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아니 왔으면 가지 아니하는 것이니까 도리어 좋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속은 초조하였다.
견우는 허리띠와 염낭을 만지어보았다. 직녀가 밤으로 집안사람의 눈을 피하여 가며 정성과 정을 다 들이어 만들어 준 추석선물이다. 그리고 필경 이것을 울타리 터진 구멍으로 주고받고 하다가 직녀의 집안사람에게 들키어 이 애달픈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직녀의 부모는 그까짓 남의 집에서 소 부리는 놈한테 딸을 준단 말이냐고 그들의 사이를 가르기 위하여 근읍 어느 친척의 집으로 직녀를 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에서 비단 짜는 여직공을 모집하러 온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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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소설가(1902~1950). 호는 백릉(白菱)ㆍ채옹(采翁). 소설 작품을 통하여 당시 지식인 사회의 고민과 약점을 풍자하고, 사회 부조리와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작품에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濁流)>, <태평천하> 따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