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멈은 다시 나오는 기색이다. 신 끄는 소리가 중문턱을 넘어선다.
순간, 밥이라는 것이 다시금 전광처럼 눈앞에 번쩍 하고 나타날 때 나의 눈은 어느새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서적에 곁눈질을 하였다. 그것은 철학에 관한 서적으로 내 생애에 있어 사람 된 나의 전부를 키워 준 자모와 같은 것이어서 어떠한 난처한 경우일지라도 품 밖에 내어 보내서는 안 된다는 내 신념도 그렇거니와 그것은 또한 난처한 경우일수록 그것에의 해결을 지어 주는 그야말로 내 생애에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어서 이천여의 장서를 모두 팔아먹으면서도 그것만은 오직 품안에 품고 다니던 것이언만 너무도 절박한 사정이 어제 저녁 불면의 고민 속에서 차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는 백반이 다시 내일 아침을 엿볼 때에 절대한 생명은 사랑하는 책이길래 생명을 위하여 희생하자고 알뜰히도 서두르는 것이어서 지금까지 끌어 오며 마침 나는 이것의 이론에로 정당화를 시켜 놓았던 것이다.
“아이 오정이 나세요 서방님!"
어서 일어나라는 말이다.
“나 밥 안 먹겠어."
시원한 듯이 어멈은 “왜 그러세요” 한마디의 물음도 없이 발꿈치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