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반이 지나서야 차는 경성역에 닿는다. 중간에서 연해 더디 오는 북행을 기다려 엇갈리곤 하느라고 번번이 오래씩 충그리고 충그리고 하더니, 삼십 분이나 넘겨 이렇게 연착을 한다.
개성서 경성까지 원은 두 시간이 정한 제 시간이다. 그만 거리를 항용 삼십 분씩 사십 분씩은 늦기가 일쑤다. 요새는 직통열차고 구간열차고 모두가 시간을 안 지키기로 행습이 되었기 망정이지, 생각하면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바로 앞자리에 돌아앉았던 중스름한 양복신사 둘이가, 내릴 채비로 외투를 입노라 모자를 쓰노라 하면서, 역시 그런 이야기다.
“등장 가얄까 보군!”
베레모자 신사가 혼잣말하듯 하는 소리고, 다른 국방복짜리는 마침 시계를 꺼내 보면서
“꼬옥 삼십오 분 꽈먹는걸!”
“세상은 바쁘다구 디리 뛰어 달아나는데, 찬 되려 천천히 완보시니!”
“춘향 문전 당도하니, 신가?”
“참 그래! 기차란 여객비행기가 생긴 뒤루야 벌써 쇠달구지 푼수니깐…….”
기차가 춘향전과 동일지담이라니, 실없이 재미있는 감각이었다.
어느덧 조선바닥에서도 증기기관의 스피드를 한 시대 낡은 문명으로 느끼게쯤 되고…… 세태의 변천이란 미상불 쉽기도 한 것이다.
내가 기차라고 생긴 형용을 처음 비로소 타보느라, 그 요절할 광경을 하던 지가 겨우 삼십 년이 될까 말까 하다.
일곱 살 적인지 여덟 살 적인지(보명의숙이라고) 학교엘 명색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때 시절론 아직 학령 미만이었으나 얼뚱애기로 샘동이라, 형들이 다니고 이웃집 아이들이 다니고 하니까 덩달아 따라 다니면서, 1 2 3학년을 시간마다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 장난과 놀기가 주장이요 공부란 괜히 벌제위명이었지만, 아무튼지 학도는 학도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