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창피창피 한대야 나 같은 창피를 당해 본 사람이 있겠나.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도 부끄러울세. 그렇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창피는 다시 한번 당해 보고 싶기도 하거든.
이야기할께. 들어 보게.
오 년 전 ― 육 년 전 ― 칠 년 전인가. 어느 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혈기 하늘을 찌를 듯하던 젊은 시절일세그려. 지금은 벌써 내 나이 삼사십.
얼굴에는 트믄트믄 주름자리까지 잡히었지만 이 주름자리도 없던 젊은 시절.
절기는 봄날. 우이동 창경원에 벚꽃 만개하고 사내계집 할 것 없이 한창 바람나기 좋은 절기일세그려. 얌전하던 도련님 색시들도 바람나기 쉬운 봄철에 그때 장안 오입장이로 자임하고 있던 이 대감이 가만 있겠나. 비교적 수입도 좋것다. 허위대 풍신 언변 남한테 빠지지 않고 시조 한 마디 가야금 한 곡조도 뽑아 낼 줄 알고 경우에 의해서는 호령마디도 제법 할 줄 알고 ― 장안 오입장이로는 그다지 축가는 데가 없던 대감일세그려. 그 위에 여관 생활하는 자유로운 몸이것다. 친구놈들도 모두 제법 한몫씩은 보는 놈들이것다.
― 이런 이 대감께서 말일세. 그 어떤 와류생심하고 ― 아니 이러다가는 교외정조가 나겠네. 도회풍경으로 사꾸라 만개하고 창경원에 야앵구경의 바람장이들이 몰려가는 날 몇몇 친구를 짝해서 한바탕 어디서 답청(踏靑)을 잘했다고 하세.
돌아오는 길일세. 친구놈들은 제각기 기생집으로 갈 놈은 기생집으로 가고 여편네 궁둥이를 찾아갈 놈은 제 집으로 가고 대감은 기생집도 그날 따라갈 생각도 없고 해서 여관으로 향했네.
밤도 자정은 지난 때. 야앵구경 갔던 연놈들도 모두 음란한 자리 속으로 바야흐로 들어갈 시간에 이 대감께서는 아주 호젓한 마음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여관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옥보를 옮기고 있지 않았겠나. 어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길 모퉁이를 돌아설 때일세그려. 웬 계집애와 탁 마주쳤네그려.
물론 예의를 차리는 이 대감이 사과를 했지. 고멘나사이(ごめんなさい ― 용서하십시오) 하고. 그러고는 그냥 지났지. 지나고 생각했네. 여기는 북촌이다, 북촌의 대로도 아니요 골목이다. 이 북촌 골목에 웬 남촌 계집애가 단 혼자서 그것도 자정이 지난 이 때에 방황하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