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정성도 하늘은 몰라보았다. 어린애는 폐렴이 된 지 사흘째 되는 저녁 마침내 가망이 없이 되었다. 은희가 십수 년 전에 어린 동생 만수의 최후에서 본 바의 현상― 답답한 듯이 헤적이던 온갖 행동을 멈추어 버리고 비교적 평온하고 온화한 모양― 을 은희가 필립에게서 발견한 것은 폐렴이 된 지 사흘째 되는 저녁이었었다.
사흘을 미음만 조금씩 먹어 가면서 한잠을 자지를 않고 다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병간호를 한 은희는 이 날은 벌써 자기로도 자기에 대한 온 판단력을 잃은 때였었다. 아직껏 답답함에 못이겨서 헤적이던 어린애가 비교적 평온하게 될 때에 은희는 인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뿐 그냥 움직이지 않고 그 모양대로 앉아 있었다. 비교적 평온한숨을 규칙 바르게 쉬는 어린애의 얼굴을 때때로는 안개를 격하여 보는 듯이 때때로는 비상히 똑똑히 ― 바라 보면서 앉아 있는 은희의 머리는 각일각 나락의 밑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세상 만사가 모두 중하고 의미 없고 흐리멍덩한 가운데서 이리 바뀌고 저리 뒤채는 것이 귀찮고 시끄럽기가 짝이 없었다.
“만수야 너 필립하고 싸우지 마라.”
여기서 한 번 펄떡 정신을 차렸던 은희는 무릎을 조금 움직일 뿐 다시 어렴풋이 어린 필립을 내려다보았다.
즉 필립의 주위에는 불이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불이었었다. 시뻘겋게 불 붙는 가운데 필립의 얼굴만 두드러지게 나와서 답답한 듯이 양손을 헤적이며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필립의 주위에 있는 불은 더욱 맹렬히 타올랐다.
온갖 것을 다 사르려는 듯이 맹렬히 타올랐다. 필립의 옷에도 불이 당긴 모양이었었다. 몸이며 사위(四圍)를 온통 불에 둘러싸인 필립은 머리와 양손만 이불 밖으로 내어놓고 누구를 찾는 듯이― 틀림없이 어머니를 찾는 듯이 헤 적였다. 은희는 사랑하는 아들을 그 무서운 불에서 구하려고 맹연히 어린아 이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는 새빨간 처네이불을 손으로 쓸어안았다. 그 가 시뻘건 불이라 본 것은 전등에 반짝이는 비단 처네였었다.
필립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오래간만에 웃음의 그림자가 있었다. 일 주일 내외에 무섭게 여윈 필립은 그 여윈 뺨에 주름을 내며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