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유희

채만식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1년 01월 1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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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늦은 봄 첫여름의 지리한 해가 오정이 훨씬 겹도록 K는 자리에 누운 채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그가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대신 아침에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서 항용 아홉시나 열시 전에는 일어나지를 아니하지만, 그렇다고 오정이 넘도록 잠을 잔 적은 없었다. (하기야 그는 잠을 잔다는 것보다도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만 았았을 따름이다.)
보통때라도 누구나 오정이 지나도록 드러누웠으면 시장기가 들 터인데, 하물며 그 안날 아침부터 꼬박 내리 굶은 그가 일찌기 일어나서 밥을 먹을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만일 집안에 돈이 되었든지 쌀이 되었든지 생겨서 밥을 지었으면 알뜰한 그의 어머니가 부랴부랴 나와서 일어나라고 재촉을 하였을 터인데, 도무지 그러한 소식도 없고, 안에서도 밥을 짓는 듯한 기척이 없어 고요하기 때문에 그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민두룸히 드러누워 있었다.
K는 지금까지 밥을 굶어본 적이 없다. 스물일곱이라는 반생 동안에 처음 배고픈 때를 당하여 보았다.
그는 창자 속을 할퀴어내는 것같이 시장기가 들었다. 먹은 것이라고는 그 안안날 저녁때 즉 마흔두 시간 전에 찬밥 한술밖에는 더 뱃속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는데, 무엇인지 목구멍에서 가끔가끔 꼬르륵 소리가 청승맞게 나고, 그럴 때마다 오목가슴 밑이 끊어지는 것같이 쓰리었다. 뱃가죽은 홀쪽하게 등으로 내려붙고 허리는 힘이 빠져서 허든허든하였다. 눈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움쑥 가라앉았다.
그는 주림의 고통이 가장 심한 맨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잠이라도 자서 배고픈 고통을 잊으려 하였으나 충분한 휴식을 하고 난 그의 머리는 다시 더 쉬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담배까지 피우고 싶었다. 자고 난 입맛이 텁텁한 판에 한 개─일상 많이 피워서 맛을 잘 아는 비둘기표 고놈 한 개를 붙여 물고 푹푹 피우고 싶은 생각이 배고픈 것이나 지지 않게 간절하였다. 그러나 담배란 담자도 있을 턱이 없고 재떨이에 있던 꼬투리도 그 안날 저녁까지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어리석은 공상의 실마리를 좇아 호화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공상은 어디까지든지 공상일 뿐이라, 그 공상에서 깨고 나서 목전에 육박된 현실을 의식하면 입맛이 쓰고 몸이 뒤틀리게 짜증이 났다.
그는 자기 집안을 그 지경을 만들어놓은 자기의 맏형을 원망하였다. 좀 들이껴서는 그의 집안이 호화로운 부자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그다지 남이 부럽거나 남에게 아쉬운 청을 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만한 살림살이를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K의 맏형은 담만 크고 규모가 없기 때문에 어장으로 광산으로 미두로 모조리 실패를 보고 필경은 모르핀 중독자로 이 세상의 폐인, 산송장이 되어 집안에 약간 남은 전답이며 무엇이며를 모조리 팔아먹고는 끝끝내 형무소의 신세를 입고 있었다.

저자소개

소설가(1902~1950). 호는 백릉(白菱)ㆍ채옹(采翁). 소설 작품을 통하여 당시 지식인 사회의 고민과 약점을 풍자하고, 사회 부조리와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작품에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濁流)>, <태평천하> 따위가 있다.

목차소개

<저자에 대해>
생명의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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