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강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이따금 뜰가 수수밭을 우수수 스쳐간다. 마당 가운데서 구름발같이 무럭무럭 오르는 모깃불 연기는 우수수 바람이 지날 때마다 이러저리 흩어져서 초열흘 푸른 달빛과 조화되는 것 같다.
벌써 여러 늙은이들은 모깃불가에 민상투 바람으로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끝없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주인 김 서방은 모깃불 곁에 신틀을 놓고 신을 삼는다. 김 서방의 아들 윤길이는 모깃불의 감자를 굽는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가물과 장마를 걱정하고 이른 새벽 풀끝 이슬에 베잠방이를 적시면서 밭에 나갔다가 어두워서 돌아와 조밥과 된장찌개에 배를 불리고 황혼달 모깃불가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네에게는 한 쾌락이다.
“날이 낼두 비 안 오겠는데.”
수염이 터부룩하고 이마가 훨렁 벗어진 늙은이가 하늘을 치어다보면서 걱정하였다.
“글쎄, 지냑편에는 금시 비올 것 같더니 또 벳기는데…….”
서너 살 되었을 어린애를 안고 앉아서 김 서방의 신삼는 것을 보던 등이 굽은 늙은이는 맞장구를 치면서 하늘을 보았다.
퍼렇게 갠 하늘에는 조각달이 걸리었고 군데군데 별이 가물거렸다.
“보리 마당질할 생각하면 비 안 오는 것두 좋지마는 조이와 콩 다 말라죽으니……. 참 한심해서.”
하는 이마 벗어진 늙은이의 소리는 타 들어가는 곡식이 안타까운지 풀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