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어떤 날 황혼이었다.
목포역을 떠나 서울로 가는 밤차는 호남선 송정리역(松汀里驛)에 닿았다.
고요한 시골 산천을 울리는 차 바퀴 소리가 뚝 그치자 뒤이어 내리는 손님, 오르는 손님들로 하여 쓸쓸하던 시골 역은 들썩하였다. 들썩한대야 서울 정거장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은 한 달에 여섯 번씩 열리는 장날이나 그렇지 않으면 명절 때밖에 사람의 물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시골이라 매일 몇 차례씩 들레게 되는 정거장은 참말 위태하고도 복잡한 곳이었다.
이삼 분 되나 마나 해서는 들레던 물결도 고요하여졌다. 그때는 오를 사람은 다 오르고 내릴 사람은 다 내려서 출구 밖으로 나온 때였다. 인제 들리는 것은 기관차가 뿜어내는 김 소리와 역부들이 외치는 미미한 소리였다.
그것은 극히 미미한 소리였다. 기관차의 숨소리에 위협을 받았는지 사람의 소리는 소리로서의 아무 효력도 보이지 못하였다. 다닥다닥 잇닿은 차장으로 들여다보이는 사람의 그림자들은 보는 사람의 눈에 많은 존재를 비추어 주지만 그것도 딱 버티고 길게 늘어진 엄연한 차체의 존재에 대면 역시 미미한 존재이었다.
이 존재가 다시 김을 뽑고 하늘에 뻣뻣이 그은 굴뚝으로 검은 연기── 불꽃이 섞인 검은 연기를 심술궂게 뿜으면서 지나간 뒤의 정거장은 여전히 쓸쓸하였다. 좀 과장하여 말하면 십 리에 하나 되나 마나한 장명등 불빛은 점점 흐려 가는 대지를 꿈같이 비췰 뿐이었다. 그러나 찍혀 눌렸던 모든 것은 숨을 내쉬는 것 같다.
땅거미 점점 짙어가서 먼 산 산날이 하늘가에 물결같이 보이면서부터 봄은 봄이나 그저 겨울 기운이 남아 흐르는 하늘에는 별들이 가물가물 눈을 떴다.
인제는 스쳐가는 실바람에 갈리는 보리싹의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플래트폼’과 역실에서 어물거리는 사람들까지도 고요히 왔다갔다 하였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흐뭇이 지친 끝에 솜같이 부드럽고 푸근한 안정을 바라는 고요함이었다. 그러나 또 미구에 굉굉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들 그 엄연한 기계는 그네들에게 그네들이 바라는 안정을 허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 지금의 사람들은 자기네가 만들어 놓은 기계로 말미암아 한평생의 안정을 잃는 것이요 자칫하면 목숨까지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운명을 저주하고 또 운명을 믿는 것을 보면 가긍하고도 우스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모순 덩어리다.
그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