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화는 오늘 아침에 여느 때보다 한 시간 가량이나 일찍 출근하였다. 그가 사에 들어선 때는 아홉시 오 분 전이었다. 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 이렇게 일찍 출근한 것은 일을 일찍이 마치고 오후 세시에 영도사로 나가려는 까닭이다. 어떤 친구가 오늘 오후에 영도사에서 생일 턱을 한다고 어젯밤에 박인화도 청하였던 것이다.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아침 햇발은 벌써부터 더위를 몰아붓는다. 그는 창을 열어 놓고 문장(門帳)을 내린 뒤에 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어제 보다 남은 원고와 준장(準張)을 끄집어내 놓고 부지런히 붓질을 하였다.
그가 이렇게 일하고 있을 때였다. 층층다리로 쿵쿵 올라오는 자취 소리가 들린다. 빠르고 둔탁한 것은 사환애의 발소리다 하고 생각하는데 그가 앉은 맞은편 문이 열리면서 디미는 것은 아니나다를까, 검데데하고 기름한 사환 애의 얼굴이었다. 방바닥을 쓸고 책상들을 닦아 놓은 것을 보아서는 벌써 왔다가 어딘지 나갔던 것이다.
“너 어디 갔던?”
박인화는 사환의 인사를 받으면서 그를 치어다보았다.
“아침에 댁으로 누가 가시잖었에요?”
사환은 딴전을 부리면서 그를 치어다본다.
“안 왔어……. 누가?”
그도 의아한 눈초리로 사환애를 마주 바라보았다. 사환애는 저편 테이블 위에 놓은 종이 조각을 집으려고 그편으로 몸을 주면서,
“아까 누가 선생님댁 번지를 묻고 길까지 물어 보는뎁시요.”
하더니 집은 종이 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백…… 백영훈씨라는…….”
“어디 보자…….”
그는 사환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이가 오셨든?”
그는 받아든 종이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서투른 연필 글씨로 휙휙 ‘백영훈’이라 쓰고 또 그 옆에 ‘최일천’이라 썼는데 그 이름 아래에 죽을 사(死)자만은 한문으로 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