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에 바투 매어달린 전등은 방 주인 병조와 한가지로 잠잠히 방안을 밝히고 있다.
대청마루에 걸린 낡은 괘종이 뚝떡 뚝떡 하며 달아나는 시간을 한 초씩 한 초씩 놓치지 않고 세었다.
큰방에서는 돌아올 시간이 아직도 먼 아들을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영복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이따금 콜록콜록 들려나왔다.
바로 집 뒤에 약현(藥峴)마루를 내노라고 왕자(王者)답게 차지하고 있는 천주교당에서는 벌떼 소리 같은 찬송가 소리가 울려나왔다.
자정이 지나지 아니하면 그칠 줄을 모르는 경성역의 요란한 기차 소리들은 여전히 어수선하게 야단을 내떨었다.
그러나 병조는 잠잠히 앉아 철필대만 놀렸다.
그는 벽에다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거침새없이 내뻗고 앉아서 책상-양탄자를 씌웠으면 값 헐한 중국요리집의 요리상으로 쓰기에 꼭 알맞은 형용만 갖춘 책상-위에 얼른 보기에는 흰 테이블 크로스를 덮은 것 같으나 알고 보면 영복이가 기계과에 있는 덕에 가끔 몇장씩 가져오는 널따란 양지―를 펼쳐놓고 철필을 든 손으로 무심하게 글자를 끄적거렸다.
내리긋고 건너서 내리긋고 건너긋고 다시 건너그은 날일(日)변에 내리 삐치고 건너서 내리삐친 밑에 입구(口)를 해서 밝을소(昭)……
왼편으로 내리긋다가 중간을 꺾어서 바른편으로 잡아 긋고 왼편으로 내리삐치고 올라가서 건너삐친 계집녀(女)변에 건너긋고 내리긋고 건너서 내리긋고 건너긋고 또 건너그은 클거(巨)를 해서 계집희(姬)……
밝은소 계집희 소희 소희 소희……
그는 소희 두 자만 자꾸만 썼다.
여기다도 쓰고 저기다도 쓰고 굵게도 쓰고 잘게도 쓰고 왼편으로 비껴도 쓰고 바른편으로 틀어도 쓰고 어여쁘게도 쓰고 투박스럽게도 쓰고 또 모로도 쓰고 하였다―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심하게 철필을 놀렸다.
이렇게 ‘소희’를 수없이 쓰는 동안에 병조의 얼굴은 표정 연습을 하는 배우의 얼굴같이 각가지로 변하였다.
황홀도 하여지고 미소도 하고 추렷이 가라앉기도 하고 쌀쌀도 하여지고 침울한 빛도 떠오르고 돌에 새긴 듯한 고민도 보이고 그러다가는 앞서 것들을 되풀이를 하고 하였다.
네 번을 겹쳐 접어야 사륙판 열여섯 장이 되는 전지 한 장에 글자를 알아볼 수가 없이 새까맣게 써놓았다.
새까만 위에다 그래도 또 쓰고 또 쓰고 하였다.
실컷 쓰다가는 어찌 주의가 끌렸든지 종이를 뒤집어놓고 ‘소희’라 큼직하게 두 자를 써놓았다.
그는 흰 바탕에 크고 뚜렷이 나타나는 ‘소희’를 보고 붓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희…… 소희.” 하고 그는 중얼중얼 혼자서 중얼거렸다.
“소희…… 일흠은 밝고 쾌활한데 어쩌면 그렇게 사람이……”
펼쳐보기
내용접기
저자소개
소설가(1902~1950). 호는 백릉(白菱)ㆍ채옹(采翁). 소설 작품을 통하여 당시 지식인 사회의 고민과 약점을 풍자하고, 사회 부조리와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작품에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濁流)>, <태평천하> 따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