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시(子時).
축시(丑時).
인시(寅時)도 거진 되었다.
송악(松嶽)을 넘어서 내려부는 이월의 혹독한 바람은 솔 가지에서 처참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온 천하가 추위에 오그러뜨리고 있는 겨울 밤중이었다.
이 추위에 위압되어 행길에는 개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고 개경(開京) 십만 인구는 두꺼운 이불 속에서 겨울의 긴 꿈을 꾸고 있을 때다.
그러나 대궐에는 이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고관에서부터 말직까지가 모두 입직하여 있고, 방방이 경계하는 듯한 촛불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왕후궁 노국 대장공주전(魯國 大長公主殿)의 앞에는 내시며 궁액들이 몸을 우그리고 추위에 떨며 심부름을 기두르고 있었고, 침전의 밖에도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침전―정침에는 아무도 없는 대신에 그 협실에 두 사람이 있었다.
협실에 안치(安置)한 불상(佛像) 앞에 중 편조(遍照)가 합장을 하고 꿇어앉아 있고 그 곁에는 고려 국왕 공민(恭愍)이 단아히 역시 불상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난산(難産) 후에 환후 위독한 왕후 대장공주의 쾌차를 불전에 빌기 위하여 왕은 비밀히 중 편조를 침전까지 불러들이어서 여기서 기원을 드리는 것이었다.
부처에 매우 귀의해 있는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에 구해 두었던 영하다는 불상 앞에 지성으로 꿇어 엎드려 있는 왕과 편조.
어지럽고 불길한 일이 박두해 있는 가운데서도 고요히 고요히 깊어 가는 겨울의 밤을 왕과 편조는 불상 앞에 엎드려서 공주의 쾌차를 빌고 있었다.
궁중에 비밀히 불러들인 편조라, 큰 소리로 기원을 외지도 못하고 입 속으로 드리는 그 기원에 왕은 연하여 합장 예배하였다.
이때에 복도를 쫓아서 공주부(숙옹)에서 침전으로 달려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소리나 또한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였다.
왕은 빨리 일어나서 협실에서 정침으로 나왔다. 협실과 정침을 가로막는 장지문을 겨우 닫을 때쯤 공주부에서 달려온 궁녀가 침전 밖에 시직하는 내시에게 무엇을 소군소군 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왕이 자리에 자리를 잡을 때에,
“환관 최만생(崔萬生) 아뢰옵니다.”
하는 내시의 말이 들렸다.
“음. 무에냐?”
“잠깐 내전까지 입어합시샤는 후전(后殿)마마의 전탁이 계시오니다.”
“음. 가마.”
황황히 일어나서 내시의 부액도 받을 겨를이 없이 공주부로 발을 옮길 동안 왕의 가슴은 놀랍게도 방망이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