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지 못한 몸이라, 업순이는 가을 새벽의 쌀쌀한 바깥 바람기가 소스라치게 싫어, 연해 어깨와 몸을 옴츠린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오고.
가방이, 하찮은 것 같더니(그도 원기가 쇠한 탓이겠지만) 들고 걷기에 무척 힘이 부쳤다.
훤하니 빈 공장 마당엔 이편짝 창고 앞으로, 간밤에 짐을 냈는지 펐는지 미처 쓸지 앉은 채 뽀오얗게 된서리가 앉은 새끼 토막이 낭자히 널려 있다. 그 차가운 서릿발이, 가뜩이나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듯 업순이는 얼른 외면을 한다.
외면하는 눈 바로는 저기만치 나란히 선 쌍굴뚝에서 시꺼먼 연기가 뭉클뭉클 소담스럽게 솟아올라, 불현듯 푸근한 공장 안이 생각힌다.
시방 공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업순이는 한량없이 언짢은 마음이다.
병이 나서, 얼마 동안 공장의 전속 의사한테 약도 먹고 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몸은 아프고, 몸이 아프니 집 생각은 여느때보다도 더 간절하고. 이래저래 집으로나 가보는 것밖에 없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데려다 주느라고 같이 가는 공장 인사계의 ‘장선생님’은 황새처럼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앞장을 서서 정문을 향해 걸어나가고 있다.
기운은 허한데, 업순이는 만만치 않은 짐까지 한손에 들고 그 뒤를 따르자니 자꾸만 아랫도리가 휘뚝거리고 발길이 제대로 떼어지질 않았다. 팔은 사뭇 늘어나고. 누가 불끈 좀 들어다 주었으면 절을 열 번이라도 할 것 같았다. 이렇게 하고, 삼십 분이나 걷는 정거장까지 나갈 일이 그만 기가 질려 못하겠었다.
그나 그뿐인가. 차에서 내려서 집에까지 가는 십리길은 어떻게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어제쯤 아버지더러 이리로 좀 와주시라고 전보라도 칠 것을. 찻삯이야 돈은 얼마간 들더라도 차라리 그랬더라면 퍽 좋았을 것을. 어머니나 아버지는 언문도 모르는 이들이라지마는, 그렇기로 동네서 전보 한 장 보아줄 사람이 없진 않을 텐데.
이런 후회도 하면서, 넓은 마당을 다 지나, 마악 철문을 나서다가 문득 그제서야(무엇이 깨우쳐 준 듯) 주춤하고 고개를 돌이키며 휘이 한 바퀴 공장 울안을 둘러본다.
마침 5호동(五號棟)의 이층에서 동무들이 서넛이나 한데 엉키어 열린 유리창으로 내다보고 있다가, 일시에 손수건이랑 손을 흔들어 준다. 그렇게 하고들, 기다리고 있었음이리라.
그러고 그들은 저마다
‘업순아 잘 가거라! 응?’
‘잘 가거라. 업순아?’
‘얼른 낫어가지구, 또 오너라! 응?’
이렇게 소리소리 외치며 당부를 했을 것이건만, 작업중이라 반장이 알아듣고 쫓아와서 지청구를 할까 봐서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안타까이 손수건이랑 손만 흔들어쌓던 것이다.
업순이는 와락 목안에까지
‘잘들 있거라!’
‘을녜야 잘 있어, 응?’
하고 외쳐지는 것을, 역시 동무들을 위해 조심이 되어, 꿀꺽 소리를 삼키고 손만 마주 흔들면서 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가득 고이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이 된 닷새 전 그날부터 줄곧 그리고 어젯밤에도, 마지막 아까 식당에서도, 동무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작별엣 말을 나눌 적마다 번번이 나오려고 나오려고 하는 것을, 참고 참고 하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