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둥이

강경애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1년 04월 0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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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벅벅 할퀴는 소리가 있다. 문득 보니 교실문이 벙싯하였고, 개의 발이 방금 문을 할퀴는 중이었다. 검은 털 속으로 뿌하게 나온 발톱이란 칼끝보다도 더 예리해 보인다. 이스근해 문이 열리고 귀가 덥수룩히 늘어진 검정개 한 마리가 덥씬 들어온다. 구슬구슬한 털이랑 기름한 눈 하고 쀼죽히 튀어나온 주둥이며 뚱뚱하고도 늘씬한 허리가 일견 위풍이 느름하였다. 학생들은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고 그 중에는 웃는 이까지 있었다.

칠판에 썼던 글을 지우던 K선생이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귀가 띄어 머리를 돌리니 검둥이가 꼬리를 치며 달려온다. 선뜻 반가운 맘이 드는 동시에 별안간 일어나는 분노는 자기로서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책상 위에 있는 채찍을 들어 개의 머리를 힘껏 쳐버렸다. 개는 껑충 뛰어오르면서도 피하려 하지 않고 여전히 K선생의 앞으로 달려든다. 설레설레 젓는 꼬리 끝에 잠깐 발린 흰 털이란 박꽃처럼 희다. 그러나 끝내 개는 껑껑 울면서 뛰어나갔다.

"자, 그럼 내일 연습들 잘해 오시우."

K선생의 말소리는 약간 떨리는 것 같고, 핏빛이 얼굴에 좍 내돋는다. 눈 아래 포르스름한 근육이 발랑발랑 뛴다.

"그 개가 교장선생님네 개지?"

"아니다. 김선생님네 개다."

"교장선생 댁에 있던데……"

책보를 꾸리는 학생들은 이리 소근거린다. 귓결에 이 말을 들은 K선생은 아차 내가 또 감정적 행동을 했나 보구나 하니, 어쩐지 자신은 끝까지 소인이요, 평생 요 모양으로 남의 눈에 거친 짓만 할 듯싶어 슬픈 맘이 들었다. 하나 대인인들 부럽지 않다! 이러한 한 부르짖음이 가슴에 울컥 끼쳐진다.

학생들의 예를 받고 나오는 K선생은 머리가 우쩍거리고 다리가 허청 거려진다. 그럴 것이, 이틀이나 오롯이 굶었기 때문이다. 새로 페인트칠한 으리으리한 이 복도에 골이 메여서 학생들은 밀려나간다. 뽀한 먼지속에 구두냄새 같은 게 흘흘 풍기고, ant 신발소리가 북을 울리듯 쿵쿵한다. 창 밖에 단풍진 포플러 가지가 바람에 팽그르 돌고, 먼 하늘이 갸웃이 들여다본다. 무척 낯익다.

"선생님 어디 편치 않으십니까?"

K선생이 머리를 돌릴 때 별안간 앞이 아뜩해지므로 잠깐 정신을 수습하려 눈을 감았다 뜨니, 곁에 서서 당황히 쳐다보는 학생은 언제인가 모종의 혐의가 잇다 하여 순사에게 끌리어가던 그였다. 왼편 눈과 볼에 그때 표정이 안개같이 스러지는 것이다.

"너냐!"

K선생은 이리 말하고 다시 보니 그는 아니고 현재 재학생 중의 한 사람이다. 학생의 팔에 의지하여 사무실까지 오는 K선생은 소리쳐 누구를 부르고 싶어진다.

저자소개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1924년 잡지 《금성》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고향에서 학생과 농민을 지도하며 신간회와 여성 단체인 근우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31년 단편 소설 「파금」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병마와 생활고 등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식민지 조선의 빈궁 문제와 여성의 고통을 작품화하는 데 힘썼다. 작가 강경애의 문제의식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인간 문제』와 「지하촌」을 비롯해 「원고료 이백 원」, 「소금」, 「어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목차소개

<작가 소개>
검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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