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건전지가 기저귀 채울 때 사용하던 노란 고무줄로 칭칭 감겨 있는 라디오에
서 프랑스 지휘자인 Frank Pourcel의 Merci Cherie가 흘러나옵니다. 소녀가 두 팔
로 턱을 바치고 물장구치듯 두 발을 들어서 시그널 음악에 맞춰 발가락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습니다. 호롱 불빛이 그녀 발가락 장단 움직임을 따라서 찰랑거립니다.
- 별이 빛나는 밤에.
음악 방송 남자 DJ가 걸쭉한 목소리로 싸리문 밖에 서성이던 달빛을 부릅니다.
- 당신 곁에 마음의 상처 때문에 죽을 것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새 봉당에 넘실대는 달빛 물결에 첨벙 뛰어든 음표들이 저만치 밀려갔다가, DJ
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와 다시 소녀 발장단에 철썩 부딪힙니다.
- 그런 사람이 있다면 따듯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 진짜 힘들겠구나. 그렇게 힘들 때 너는 어떻게 하니?
달빛 파도가 안방으로 향하는 봉당 턱까지 밀려왔다가 우물가로 쏴아 몰려갑니다.
- 그가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마음의 다락방에 감춰 두었던 상처 보따리를 펼쳐
보이거든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 나한테 말해 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겠다. 그럴 때 네 마음은 어땠어?
달빛이 툇마루 아래에 잠들어 있는 바둑이를 누렁이로 물들여 놓고 문간방으로 달
려갑니다.
- 그가 먹먹함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눈물 단지 뚜껑을 돌리기 시작하면, 그 손 위에
당신의 손을 포개며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 그렇구나, 그렇구나, 네 마음이 그렇구나. 힘들 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항상 너의 편이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