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소개
일제시대 최초의 대규모 전투가
봉오동에서 벌어진다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무장투쟁에 막이 오른다
봉오동 전투의 배경과 시작, 그 뒷이야기까지,
봉오동 전투의 모든 것!
봉오동 전투는 정규군끼리 전투를 벌인 것이 아니라 정규군과 게릴라가 맞붙은 전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규군의 목표는 적을 물리치고 목표를 차지하는 것이다. 게릴라가 수행하는 비정규전은 적을 괴롭히고 지치게 만드는 게 우선이다. 봉오동 전투는 게릴라이자 비정규군인 독립군이 정규군인 일본군을 완벽하게 이긴 전투다.
― 본문 중에서
1920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벌어진 전투를 봉오동 전투라고 부른다. 봉오동 전투의 실상은 한중일의 기록이 모두 달라 서로 비교해가며 팩트체크를 할 필요가 있다. 일본군 사상자 숫자만 해도 독립군 측은 157명, 중국 관헌 측은 52명, 일본군 측은 1명으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의 첫 권인 《봉오동의 총성》은 이 모든 기록을 종합해서 봉오동 전투의 그 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적한다. 봉오동 전투의 배경을 세계사 속에서 설명하고, 전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한중일의 기록을 비교해서 합리적인 추론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봉오동 전투가 비정규군인 독립군이 정규군인 일본군의 작전 목표를 완전히 좌절시킨 빛나는 승리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1920 봉오동 전투, 항일무장투쟁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오르다
1920년, 독립군은 간도와 연해주로 침투해오는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조국을 일본의 손에 빼앗긴 지도 10년.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봉오동에 모여들었고 일본군이 추격해왔다. 조선의 국권이 일제에 넘어간 이래, 중대 규모 이상의 부대가 맞부딪친 최초의 전투가 100여 년 전 봉오동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독립군은 지형의 이점을 잘 살린 매복 작전을 펼쳐 봉오동에 모여든 독립군을 토벌하겠다는 일본군의 작전 목표를 완전히 좌절시켰다. 일본군과 독립군의 사상자 숫자는 전투가 복잡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러시아와 청에 승리를 거두고 기세를 올리던 일본군이 독립군을 제압하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것이다.
봉오동 전투의 결과, 독립군의 무장투쟁은 한층 더 탄력을 받았다. 군자금 모금과 무기 구입, 병력 충원의 숨통이 트였고, 여러 부대가 연합해 승리를 거둔 봉오동의 사례가 모범이 되어 무장단체 간의 통합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봉오동의 승리가 일제의 지배 10년 차에 꺼져가던 독립에 대한 열망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조선인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했다.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 봉오동의 승리는 조선인들에게 일본군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빛 한 줄기의 희망은 결코 작지 않다. 봉오동 전투는 이후 전개되는 무장투쟁의 서막을 본격적으로 열어젖혔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 1권《봉오동의 총성》은 봉오동 전투의 실상과 이 승리가 되살려낸 독립투쟁의 불씨를 생동감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독자들께 이 책과 함께 100년의 시공을 넘어 역사 속 전장으로 되돌아가 보기를 권한다.
치밀한 고증과 세계사의 만남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는 세계사와 한국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무기와 복식에 대한 디테일한 고증도 놓치지 않는다. 1권인 《봉오동의 총성》은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세계정세 속에서 무장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1920년이 여러분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100년 전, 독립군의 전장 속으로!
봉오동 전투 이전부터 독립군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강을 건너는 순간부터 목표를 습격하고 중국 땅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숨 한 모금 함부로 크게 쉴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발 한번 잘못 디뎌 큰 소리라도 나면 일본군에게 모두가 발각되어 총알 세례를 받게 될지도 몰랐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는 숨 막히게 긴장감이 흐르는 독립군의 전장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소환한다.
독립군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독립군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군도 자금과 물자를 모으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입고 먹어야 싸울 수 있었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는 독립군이 중국 동북지역과 연해주의 조선인과 교류하고, 훈련을 받는 모습까지, 전투 장면 바깥의 독립군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독립군의 게릴라 투쟁,
발포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철저히 엄폐하라!
독립군이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매복 작전을 벌이고 장비와 병력의 열세를 극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장의 지형이나 독립군의 배치, 철저한 사격 통제, 사용한 무기, 무기의 입수 경로 등 상세한 내용은 알기 쉽지 않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는 독립군의 모든 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만화로 만나는 가장 생생한 독립운동 이야기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는 독립운동, 그중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을 종합한 최초의 교양만화 시리즈다. 독립군 이야기를 담기에 교과서는 너무 좁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는 교과서가 담지 못한 독립운동과 세계사의 만남,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의 상세한 이야기들을 생생한 만화로 재현해낸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시리즈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독립운동 이야기를 청소년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독립군의 무기, 전장의 지형 등을 엄격하게 고증하고,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 성인 독자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했다.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사〉 시리즈와 함께라면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배울 때 느꼈던 암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우리의 선조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역사 속 현장으로 떠나볼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의 글
이 책을 통해 내 것이 되는 3가지
1. 역사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법
이 책은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를 무대로 살아갈 청소년들이 역사를 균형감 있게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역사학자 임용한
2. 스스로 진실에 다가가는 힘
합리적인 팩트체크를 통해 역사 속 진실을 파헤치는 게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과 함께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스스로 진실에 다가가는 힘을 길러보자.
- 한국사 강사 황현필
3. 보기만 해도 알게 되는 독립운동사
무슨 단체, 누구누구. 학교에서 근현대사 배울 땐 외울 거투성이였다. 그런 부담감을 치워놓고 이 책을 펼쳐보자.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 유튜브 전쟁사 채널 건들건들
◎ 책 속에서
pp. 25~26 임시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일대의 조선인들을 모병해서 훈련시킬 계획도 세웠다. 이렇게 편성된 군대를 이용해 일본이 강대국, 특히 미국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 연합군으로 참전해서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인 것은 1940년대인데 너무 이른 예측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안창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예측은 당시에는 틀렸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과 미국은 20세기 들어서부터 여러 이유로 갈등을 벌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다음 목표는 동북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이었다. 미국 역시 남북전쟁의 피해가 복구된 19세기 말부터 영토 확장에 나섰다. 양쪽이 충돌한 지점이 바로 아메리카와 아시아 대륙 사이에 있는 태평양이었다.
― 〈제1장 낙엽이 지기 전에〉중에서
pp. 34~35 1918년 11월, 마침내 독일이 연합국과 휴전하면서 기나긴 전쟁은 막을 내린다. 독일의 항복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을 의미했다. 세계 질서를 재편해야 했기 때문이다. 승전국인 미국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본이 독일의 태평양 식민지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들 식민지는 미국의 식민지 필리핀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이에 앞서 미국은 일본의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자 오렌지 계획을 수립해두었다. 당시 미국의 전쟁 계획은 색깔로 구분되었다.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들은 그러한 국제 정세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제1장 낙엽이 지기 전에〉중에서
pp. 82~85 홍범도를 비롯한 의병들이 사용하던 무기는 화승에 불을 붙여서 쏘는 화승총이었다. 반면 일본군과 경찰이 사용하던 무라타 소총이나 30년식 소총은 탄피가 있는 탄환을 클립에 끼워서 장전하는 방식이었다. 일본군 소총이 의병들의 화승총에 비해 사거리와 명중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거기다 일본군은 기관총과 대포까지 장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력이 월등했다. 그렇지만 홍범도와 의병들은 화승총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함경도 일대의 일본군을 연전연파했다. 홍범도를 비롯한 의병들이 지형을 잘 알고 총을 잘 다루던 포수였기 때문이다. 거듭된 승전으로 홍범도에게는 ‘나는 홍범도’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제2장 나는 홍범도〉중에서
p. 112 그런데 봉오동 전투의 실상을 추적하는 데는 참가 주체마다 기록이 각기 다르다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한중일의 기록을 비교하며 팩트체크를 하는 것이 봉오동 전투라는 퍼즐을 맞추는 작업의 핵심이다.
―〈제3장 범 아가리에 뛰어들다〉중에서
pp. 120~121 이 교전의 희생자도 민간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군이 아닌 조선인 6명을 체포했다.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만 계속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 우선 독립군은 군복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암탐 사격’이라고 부르는 일본 군경 특유의 수색방식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본군은 수상쩍은 지역이나 사람을 마주치면 일단 사격부터 하고 봤다. 적인지 민간인인지 확인하지 않고 쏜 다음에 확인한다는 게 일본군의 방식이었다. 거기다 일본군은 굳이 독립군과 민간인을 구분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은 조선인을 모두 적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제3장 범 아가리에 뛰어들다〉중에서
p. 143 1920년 6월 4일 ~ 6월 7일. 남양파견대가 신민단원들을 쫓아 도강을 건넌 이후 월강추격대가 비파동을 거쳐 유원진으로 퇴각하기까지 벌어진 일련의 전투를 봉오동 전투라고 부른다. 장비와 훈련 모두 열세였던 독립군이 일본의 정규군인 월강추격대를 기적처럼 물리친 것이다.
―〈제3장 범 아가리에 뛰어들다〉중에서
pp. 177~178 그런데 만약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전사자가 1명이라면 우리가 진 싸움일까? 전쟁의 승패를 나누는 기준은 여러 방식이 있으며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봉오동 전투는 100년 전에 벌어졌다. 과거에는 사상자 숫자보다는 원하는 걸 손에 넣으면 이긴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제국주의 시기까지 전쟁은 근본적으로 땅따먹기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사상자 숫자는 승패를 나누는 첫 번째 요인은 아니었다. 인권이 향상된 요즘과는 달리 재산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이 일상화된 시대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니이미 중위의 남양파견대와 야스카와 사부로 소좌의 월강추격대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의 목표는 달성되었는가?
―〈제4장 얽히고설킨 봉오동〉중에서
p. 183 더욱이 봉오동 전투는 정규군끼리 전투를 벌인 게 아니라 정규군과 게릴라가 맞붙은 전투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정규군의 목표는 적을 물리치고 목표를 차지하는 것이다. 게릴라가 수행하는 비정규전은 적을 괴롭히고 지치게 만드는 게 우선이다. 봉오동 전투는 게릴라이자 비정규군인 독립군이 정규군인 일본군을 완벽하게 이긴 전투다. 사상자 숫자를 둘러싼 논란은 봉오동 전투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설사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이 한 명도 죽지 않았다고 해도 독립군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4장 얽히고설킨 봉오동〉중에서
pp. 186~187 봉오동 전투의 첫 번째 의의는 독립군이 일본군의 증강된 중대 규모 부대와 벌인 최초의 교전이라는 점이다. 그 이전에도 독립군과 일본군은 계속 싸웠다. 하지만 대개 주재소나 우편마차를 소규모로 습격하는 형태였다. 반면, 봉오동 전투는 2백 명이 넘는 일본군과 수백 명의 독립군이 몇 시간 동안 맞붙은 대규모 전투였다. 그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했던 것이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봉오동의 승리는 큰 용기와 희망을 줬다. 일본군은 청나라와 러시아를 물리치고 시베리아까지 장악하고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라 자처했다. 그런 일본군을 독립군이 물리친 것이다.
―〈제5장 봉오동의 세계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