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

강경애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1년 06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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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나는 그러한 일이 이 현실에 실재해 있는지? 없는지? 그가 묻던 말에 아직까지도 그 대답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 그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언제나 저녁밥을 늦게 짓는 나는 그날도 늦게 지어 먹고 막 설겆이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 앉았을 때 밖에서,
“아저머이 계시유.”
하는 굵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냉큼 일어나 문을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밖이 어둡고 더구나 그 음성이 평시에 듣지 못하던 음성이므로 누구인지 얼핏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찾으시오?”
나는 한참이나 머뭇머뭇하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다가서며,
“아저머이 나유. 복순 아비유.”
그 순간 나는 반쯤 열어 잡았던 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갔습니다.
“복순 아버지! 이게 웬일입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그제야 그는 방안으로 들어 앉았습니다. 나는 일변 담배를 사오고 재떨이를 내놓으며 그를 똑똑히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옷은 아주 형용할 수 없이 남루하였으며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우울한 빛이었습니다. 이 맛전이 툭 솟아나는 아래로 눈은 깊이 들어가서 눈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거멓게 보이는 그 눈 속으로 이따금 번쩍이는 안광은 나의 가슴을 서늘케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뭘하러 그가 우리집에를 돌연히 찾아왔을까 하는 불안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짐을 나는 느꼈습니다.
복순 아버지는 바로 우리 윗집에서 단간방을 세 얻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벌이가 없이 그저 그날그날 노동이나 해서 돈푼이나 생기면 먹고 안 생기면 굶고 지내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았습니다. 나는 그의 아내와 좋아 지내고 어린 복순이를 귀애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이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구차하게 지낸 까닭입니다. 그들이 끼니를 끓이지 못하고 우두머니 앉은 것을 뻔히 알면서 우리만 밥을 지어다 놓고 먹기가 거북스럽고 미안하여 맘놓고 술이나 저를 구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때때로 찬밥덩이나 찌개국물이나 먹다 남은 것이 있으면 그들을 주었습니다. 주면서도 내 맘만은 항상 아수하여 어서 그들이 어디로 이사해 갔으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딸 복순이가 나를 보면 먹을 것을 줄 줄 알고 발발 기어오르는 데는 귀엽고도 가여워서 나는 한참씩이나 안아주었습니다.
“너 몇 살?”
복순이는 아직 말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지가 엉뚱하게 발달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그의 여윈 두 손가락을 쪽 펴보이었습니다. 나는 복순이를 꼭 껴안으며,
“두 살…… 이게 말두 못하는 것이 어떻게 알까.”
나는 그의 어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저자소개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1924년 잡지 《금성》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고향에서 학생과 농민을 지도하며 신간회와 여성 단체인 근우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31년 단편 소설 「파금」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병마와 생활고 등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식민지 조선의 빈궁 문제와 여성의 고통을 작품화하는 데 힘썼다. 작가 강경애의 문제의식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인간 문제』와 「지하촌」을 비롯해 「원고료 이백 원」, 「소금」, 「어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목차소개

<작가 소개>
유무(有無)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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