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일이‘이해(利害)’만 있고 ‘시비(是非)’는 없나니 시비를 논란하는 자는 오유(?儒) 속사(俗士)의 업(業)이니라.
어찌해 그렇다 하느냐.
대개 인류는 생존하는 이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것이라, 생존에 부합하는 것은 이(利)라 하며, 생존에 반대되는 것은 해(害)라 하여, 이해의 권형(權衡)으로 온갖 논설이 생길새, 인류에 이되는 것은 선(善)이라 하며, 해되는 것은 악(惡)이라 하며, 이되는 것은 정(正)라 하며, 해되는 것은 사(邪)라 하며, 복혜안영(福慧安榮)으로 우리에게 이를 주신 이는 우리가 이를 성인(聖人)이라 높이며, 화패흉얼(禍敗凶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친 이는 우리가 이를 소인(小人)이라 이름하며, 밭을 갈며 짐을 실어 우리를 이케 하는 우마는 우리가 이를 양축(良畜)이라 하여 사랑하며, 사람을 먹으며 가축을 해하여 우리를 불안케 하는 호랑(虎狼)은 이를 독수(毒獸)라 하여 싫어하나니, 차호라, 윤리·도덕·종교·정치·풍속·습관 모든 것이 모두 ‘이해’ 2자 밑에서 비평을 하는 것이다.
시비가 어디 있느냐! 시비가 어디 있느냐! 시비가 어디 있느냐!
만일 ‘시비’가 있다 하면 이는 ‘이해’의 별명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