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을 쓰기를 원했으나, 그것이 단지 소설의 형태로만 나타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무엇이라고 불리는가 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정신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언어에 대해,
그리고 음악에 대해
‘배반의 글쓰기’라 불릴 만큼 이질적인 작품으로 독자를 당혹스럽게도, 또 즐겁게도 해온 배수아 작가, 그가 또 어떻게 우리를 놀라게 할까 하던 독자들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켰던 작품. 2003년 출간되어 마니아 독자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장편이다. 초판의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그는 이 작품이 “단지 소설의 형태로만 나타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글 속에 담긴 스토리 자체를, 혹은 그런 선명한 스토리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글을 내게서 가능한 한 멀리 두고 그 사이를 뱀과 화염의 강물로 차단하고자 했다”고. 그간의 작품에서도 이 특징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2000년대 들어 발표하기 시작한 작품들에서 본격화한 것은 분명하다. 관습과 통념을 낯선 방식으로 거스르는 그의 작품은 한층 더 이방인의 것, 이국의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온 경계와 틀을 자각하게 하였다. 그 이후에 오는 것이 지금껏 몰랐던 자유로움은 아닐지.
소설은 ‘나’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그 사이사이 끼어드는 M과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핵심은 또렷한 스토리나 사건이 아닌 ‘나’와 M이 함께한 시간들, 그 시간을 ‘나’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흔히 소설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으로 구성되기 어려운 작품일 수밖에. 마치 M을 정신적 질료로 하여 그에 대한 회상에서부터 풀려나오는 언어나 음악에 대한 생각과 예술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 논평을 펼쳐놓는 에세이처럼 읽히고, 또 실제로 소설 전체가 인물이나 사건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에세이적인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에세이스트의 책상’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일반적인 생각대로라면 음악을 내게 더 많이, 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몰랐다. 더 많은 죽음이거나 더 많은 알몸(나체의 개체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단 한 명인) 최초의 인간, 더 많은 우주, 더 많은 음악의 영혼, 더 많은 유일한 것, 더 많은 더 멀리 그쪽으로, 더 많은 멘델스존, 더 많은 M, 그리고 더 많은 그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