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실린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의문투성이다. 연오가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갔다는 얘기도 곧이곧대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이고, 가서 왕이 되었다는 것도 확인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일연이 자신의 책에 남긴 이유도 석연치 않다.
작가는 이 사건을, 철의 생산을 둘러싸고 왜국과 신라 사이에 벌어졌던 첩보전으로 본다. 제철 기술자였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왜국의 ‘작전’에 의해 졸지에 ‘실직자’가 되고, 그런 그들을 왜국에서 빼내다가 제철업을 일으킨다. 제철의 중요성을 간과해 그들을 왜국에 빼앗긴 줄도 몰랐던 신라에서는 아달라왕이 즉위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역시 첩보전을 통해 연오와 세오로부터 제철 기술을 몰래 전수받는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제철 기술은 당시에 국력을 좌우할 수 있는 첨단산업이었고, 왜국에서 연오와 세오를 데려간 것은 해외 인재 유치였다. 그저 그런 신라 초기의 왕 가운데 하나로만 알았던 아달라왕은 혜안을 가지고 첨단산업을 육성해 국운 융성의 토대를 쌓은 명군이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에서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신라의 핵심 산업인 제철업이 쇠퇴했음을 상징하고, 하늘에 해맞이 제사를 올린 것은 제철 기술을 다시 전수받은 것을 가리킨다. ‘해맞이’라는 의미의 영일(迎日)이라는 지명은 그런 사연을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현대에 제철 단지가 들어선 곳이 옛 영일인 포항이다.
작가의 시각에 따르면 첨성대나 포석정, 석빙고도 모두 제철과 관련된 시설들이다. 천문 관측이니 먹고 마시는 일을 위한 시설이니 하는 것은 ‘오해’다. 신성 구역이라는 소도와 신라의 독특한 제도인 화백제도 및 갈문왕 등도 새로운 의미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