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언(君彦) 이주국(李柱國)이 무과총사(武科總使)로서 처음으로 제장을 통솔하여 한강의 모래밭에 군기를 배열하고 습진(習陣)을 벌린 것은 정조 기유(正祖己酉) 이월, 부는 바람도 아직은 으시시한 이른 새벽이었다.
『무(武)는 숙(肅)이니, 제장의 명을 준용하라.』
『군법에 거역하는 자는 일호의 가차 없이 처형 하리라.』
높이 우는 말의 울음. 새벽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포라 소리. 눈코 뜰 수 없이 어수선한 사이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 같이 명령을 내리는 주국의 태도는 말할 수 없이 늠름하였다.
싸움은 무르익어 간다.
바로 눈앞 한강의 얼음은 아직 다 풀리지 않았건만 그 사장을 에워싼 군사들의 이마에는 벌써 땀이 맺히었다.
『이번의 이총사(李總使)는 참 엄격해……』
『흥 그 사람이 뉘 아들이라구.』
이런 소리를 해가며, 눈을 껌벅이는 늙은 군사들 틈에 끼어 처음 싸움터에 나온 듯한 젊은이들은 모두 울상들을 하고 있었다. 해가 올라왔다.
어장(御將) 금장(禁將) 훈장(訓將) 형판(刑判)등 샛별같고 맹호 같은 장수들을 지휘하여 넓은 사장을 달려가고 달려을 제, 아직 젊은 주국의 마음은 기쁨과 자족(自足)함에 쿵쿵 소리를 내고 뛰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식간, 곧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한편 군사의 행군하는 뒤를 쫓아 말을 달리던 그는 문득 자기 등뒤에서 몹시 허덕이는 듯한 사람의 기척을 느끼었다.
『낙오자(落伍者)』
이렇게 생각하자, 주국은 갑자기 머리 속이 불쾌해지며 말고삐를 낚구어 뒤로 돌렸다.
이 무슨 모욕(侮辱)일가.
자기의 한 마디 명령 한번 움직이는 손 끝을 따라 정연하게 오고가는 군대에 뒤떨어져, 괴로운 숨을 내 뿜으며 억지로 따라오는 한 사람의 병사가 있었다.
『옛끼, 고약한 놈! 어쩌다 뒤떨어졌어?』
주국은 핏대를 세우고 호령하였다.
뒤떨어진 군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어찌할줄 모르고 발을 빨리하는 모양이건만, 벌써 서너 마장이나 앞선 군대를 따를 수 없음을 각오하였던지 그만 푹 거꾸러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