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소 안의 기맥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그가 인쇄소의 문을 연 것은 오정을 조금 넘어서였다.
마음과 몸이 울르르 떨렸다.
그의 계획하여 가는 일의 위험성에서 흘러나오는 불안과 또 한 가지 쌀쌀한 일기에서 받는 추위 때문에였다.
십일월을 반도 넘지 않은 날씨이니 그다지 매울 때가 아니련만 늦은 비가 한 줄기 뿌리더니 며칠 전부터 일기는 별안간 쌀쌀하여졌다.
어제밤 M·H점 좁은 온돌방에서 그 집 가족들 속에 섞여 동무들과 늦도록 일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서 설핀 새우잠을 잔 것이 더한층 그를 으시시하게 하였을 것이나 그것보다도 더 많이 마음을 압도하는 일의 중량이 그를 물리적으로 떨게 하였던 것이다.
사건이 폭발한 지 불과 며칠 안되는 이제 물샐틈없는 경계망은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길 가는 사나이는 모두 그를 노리는 것 같고 거리의 구석구석에는 수많은 눈이 숨어 그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도 같았다.
인쇄소를 찾아 뒷골목으로 들어올 때 그는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으며 인쇄소 마당에서는 또한 얼마나 기웃거렸던가.
문선부 최군에게 끌려서 전에도 한번 이곳을 찾은 일이 있었지만 주인을 매일 회사에 출근하므로 사무소는 안주인 혼자 지키고 있었다.
인쇄기계가 세 대나 놓였고 직공이 이십명이 가까운 결코 소규모가 아닌 이 인쇄소를 찾은 것은 첫째로는 문선의 최군과 굳은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이러한 인쇄소의 허수한 기회를 타서였다.
「신간 광고 삐라를 오천 장 박을 터인데 오늘중으로 할 수 있을까요?」
「잡지사에서 오셨읍니까?」
우둥퉁하고 이가 약간 밖으로 뻗은 호인일 듯한 일녀가 반가이 맞이하면서,
「지금 마침 손이 비어 있으니 될 수 있지요.」
하고 이 「잡지사에서 온 손님」에게 의자를 권하였다.
물론 손이 비어 있는 줄도 최군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었다.
창하나를 격하여 바로 공장이었다.
점심시간이므로 기계소리는 멈추었고 물주전자를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는 직공들이 창으로 들여다 보였다. 그들 속에 섞여 최군의 그림자도 어른거렸다.
「아마 미농지판으로 해야 할걸요.」
하고 그는 여러 장 되는 원고를 서슴지 않고 그에게 내 보였다.
전부가 국문이요 한자는 약간 섞였을 뿐이므로 물론 그에게는 내용을 알 리 만무하였다.
「그럼 곧 시작하겠읍니다.」
일녀는 원고를 들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기계소리가 울리며 일이 시작된 것은 불과 몇분 후였다.
원고는 물론 우리들의 계획대로 최군에게로 돌려 채자와 식자를 그가 아울러 맡았다.
「여러 번 정판 할 것도 없도록 단번에 주의하여 고르게.」
하꼬를 들고 케이스 앞에 서서 채자에 정신없는 최군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그는 공장을 나왔다.
여주인은 부엌에서 칼소리를 내고 사무소는 텅비었다.
그는 혼자 화로를 끼로 앉아서 지금 침침한 방에서는 동무들이 로울러를 밀며 역시 등사실에 분주하게 있을 것을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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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소설가(1907~1942). 호는 가산(可山). 1928년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이후, 초기에는 경향 문학 작품을 발표하다가, 점차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한 서정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에 <메밀꽃 필 무렵>, <화분(花粉)>, <벽공무한(碧空無限)> 따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