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사회 첫발을 디딘 곳은/ 걸음걸이도 조심스러웠던 서향(書香) 가득한 도서관/ 하지만 그 냄새를 기억하며 내가 한 일은/ 두 아이를 기르는 살림-/ 30년 가까운 시간이/ 내 몸을 흘러갔다/ 그 사이 작은 깨침이 있었다면/ 생활이야말로 살림의 지혜가 살아 숨쉬는/ 거대한 도서관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내 살림은 거기에 꽂힌/ 한 권의 시집이다/ - 시에는 살림의 크고 작은 사상이 꿈틀거려야 한다
― 이성이, 책머리글 <시인의 말>
[작품해설]
이번 이성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생활이야기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50을 넘어선 주부의 생활무대인 가사에서 지지고 볶는 이야기(‘아이살림/부부관계/50대의 자의식’)다. 그런 계열의 시를 열거하고 말 것도 없이 일색이다. 그래서 마주하는 사람으로서는, 시에서까지 집안 냄새를 풍겨야 할까 당황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가사를 빼버리면 무엇이 남겠는가?(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이 땅의 여성들에게서 가사를 빼버리면 무엇이 남겠는가?) 가사는 그녀들의 존재조건이자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다. 거기에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의 꽃이 자란다. 아이들은 가사공동체 안에서 이 땅 이 세상의 꽃으로 그녀에 의해서 자라난다. 따라서 가사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은 구질구질한 곳이 아니라 생명을 낳고 기르는 성소이다. 성소로서 생의 법이 관통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시를 읽다보면 놀라운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편편이 삶을 살리는 깊은 사상의 심줄로 견결하게 조직된 삶의 유기적 조직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이 그저 부엌냄새나 풍기고 지지고 볶는 이야기지만 않고, ‘나날’이기 위한 생명의 법으로 짜여진 공간이며, 어머니야말로 그 법을 자기 상황에 맞게 주관하는 자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녀는 한 소식 하신 분, 비유컨대 생명과 그 삶이 있게 하는 법을 관장하는 살림의 어머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일상이라는 어머니의 經典과 그 思想>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