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滿月) 석현수 시인이 네 번째 시집 『25시는 없다』를 펴냈다.
석현수 시인은 힘겨운 시작詩作- “한 줄 한 줄에 피를 묻히는 아픔과/ 작가의 고뇌가 있어야 하고/ 수도자修道者의 경건과/ 심마니의 수고를 보태야 하는 것이다”(「시작詩作이란」중에서)- 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는 시를 쓰고 싶다며 시를 즐거움으로 대한다는 자칭, 행복한 시인이다.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되지 않는 글이라니/ 글 써서 밥벌이하는 사람 몇 된다고?//…/ 찬밥 신세면 어떻고/ 말석末席이면 어떠냐/ 잉어빵 잉어 없듯/ 어차피 글 속에 밥이 없을 테니까 ?「밥이 없는 글」-
이번 시집 『25시는 없다』에서 시인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라는 긍정적이고 굳건한 세계관에 바탕에 두고, 시인 자신과 주변의 소시민적 일상, 여러 사회 현상, 사람들의 왜곡된 의식 등을 직설적인 시어로 솔직하게 바라보고 드러내는 시를 주로 실었다.
…/ 그냥 두어도/ 가난해 보일 가파른 언덕 위/ 배고프다 아우성치듯/ 오색 깃발이 펄럭였다// …/ 창고 극장 간판 글/ 호소인가 항변인가/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는 할 수 있습니다’// …/ 도시 개발에 맞짱뜨고 있다/ 가난을 무기 삼아 -「창고 극장」-
풍자와 위트를 담아 시인이 너스레 떨 듯하면서도 막힘없이 써 내려간 시편에는 속도전을 펼치듯 급하게 돌아만 가는 비인간적인 현재 세상을 향한 비판, 충고 같은 날 선 일갈이 주로 있지만, 사랑 연민 같은 희망의 서정이 시집 전반에 더 깊이 깔려 있다.
24시간 대기/ 골치 아픈 것 모두 맡겨 주란다./ 사는 게 별것 아니듯/ 주검도 별 볼 일 없어/ 돈 주고 버리는/ 쓰레기 감으로 대접받아야 하나 보다./ 버젓이 붙여놓은 간판/ ‘흙에서 사람까지’/ 오뉴월에도 얼어붙을/ 섬뜩한 문구다/ 사람까지라니// 골치 아픈 뒷정리/ 전화 한 통이면 끝!/ 25시라도 책임져 주겠다는 말이겠지/ 사람도/ 유품도/ 모두 뒤처리 항목/ 청소비 없으면./ 세상 뜨기 쉽지 않겠군./ 삯꾼 들여 치울 만큼/ 가진 것 많지 않으니/ 나를/ 고객 명단에 올려놓지 마라!/ ‘25시’는/ 내게 없는 시간이다 ?「25시는 없다」 전문 -
『25시는 없다』에서 시인이 진심으로 그리고자 하는 것은 비판만이 아니라 서로 간의 연대, 베풂, 느림의 여유 같은 삶의 미덕이다. 시집을 가만히 곱씹다 보면 자신과 함께 그것을 향해 나아가자는 행복한 시인의 의도가 느껴진다.
… /할아버지 허수아비/ 어설픈 치장治裝일랑 거두고/ 민낯으로 서자/ 분칠하면 할수록/ 살아온 성적표까지 너저분해진다/ 할아버지 허수아비/ 꼬부랑 농로農路/ 곧 바람 불고 비가 오겠지/ 제동장치를 살필 때가 되었다/ 삶의 속도를 줄여야지 -「할아버지 허수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