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보금자리로

이익상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1년 11월 1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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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그날의 신문 편집은 끝났다. 담배를 피워 들고 숨을 돌릴 때에 책상 위의 전화벨이 떼르르 운다. 나는 전화 수화기를 귀에 대었다. 손님이 찾아왔다는 수위의 전화였다. 손님을 응접실로 들이라고 이른 뒤에, 피우던 담배를 다 피웠다. 막 좀 쉬려 할 때에 내객(來客)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지만, 편집에 몰려 눈코 뜰 겨를 없이 바쁘게 날뛸 그때보다 오히려 귀찮은 생각은 없었다. 남은 일을 동료에게 부탁하고 바쁜 걸음으로 편집실 문을 막 나설 때에 반가이 인사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나의 고향 사람 K군이었다. 나를 찾아왔다는 이가 그이였었다.
내가 앞을 서서 응접실로 K를 인도하였다. 자리를 정하고 앉은 뒤에 K는 바로 말을 냈다.
“C에 있는 H라는 여자를 아시지요?”
H란 여자는 내가 C지방에 갔을 때에 두어 번 만나본 여자였다. H는 C지방에서 기생 노릇을 하던 여자였다. C지방은 나의 고향인 만큼 여행할 틈을 얻을 수가 없는 나로서도 일 년에 한 번, 잘하면 두 번쯤은 내려 갔었다. 고향 친구들은 서울에 있는 친구가 찾아왔다 하여 관대(寬待)를 하였다. 관대를 하는 것이 나로 하여금 일 년에 두 번이라도 고향을 찾게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평소부터 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처하는 나에게 무슨 향토의 관념이 있을 것이랴.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고향의 친지를 만나 통음을 하고 여러 사람의 사는 형편과 시가의 변화를 듣고 보는 것이 나에게는 생명을 세탁하는 한 기회가 된 까닭에, 매년 빼지 않고 기어이 C지방을 찾게 된 것이었다. H란 여자를 만난 것도 물론 여러 벗과 통음할 때의 일이었다.
내가 삼 년 전 여름에 H를 처음 보고 인상이 매우 깊었던 것은 사실이다.
인상이 깊은 이유는 간단하였다. 그의 미가 나의 맘을 끈 것도 아니요, 그의 가진 별다른 매력에 인상을 깊이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골 기생 중에서는 그가 제일 기생 노릇을 싫어한다는 이유뿐이었다. 그는 노래 공부보다도 산술(算術)이나 일어 공부를 더 좋아하고, 양금(洋琴)이나 가야금보다도 창가를 더 잘한다 하였다. 이것이 화류계 여자로서는 외도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웬일인지 학생 흉내만 내었다 한다. 그뿐 아니라 기억력이 특별히 좋아서 무엇이든 한번 일러만 주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한다. 그래서 기생으로 물론 싱겁기가 한량없다만, 그의 기생으로는 외도인 점이 도리어 손님들의 환심을 사서 나와 같은 사람이 외읍(外邑)에서 오면 C주의 명물처럼 소개하는 터이라 하였다. 말하자면 C주의 친구들이 나를 위하여 특별히 그 지방 명물로 소개한 것이었다. 그리고 화류계에 대한 아무러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백지인 내가 그 여자에게 반드시 호기심을 가지라는 생각으로 장난꾸러기 친구들이 일부러 H를 불러 술자리의 흥을 돋우자는 뜻인 것이 분명하였다. 친구들의 장난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들의 함정에 빠져 H에 대한 호기심은 제법 높아졌었다. 그리하여 나도 술잔이나 들어간 김에 그에게 달근달근 굴게 되었다. 이 달근달근하게 구는 태도가 H의 맘에는 마땅치 못했던지 그는 나에게 꽤 쌀쌀한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H의 환심을 사야 할 정도의 야심을 가지지 않은 나에게 그의 쌀쌀한 것이 아무러한 관심이 될 것이 없었다. 그는 그러하거나 말거나 나는 나의 호기심에 맡겨 좀 귀찮게 굴었었다. 그날 밤이 늦도록 그를 끌고 여러 친구와 함께 요릿집으로 헤매고 다녔었다. 나중에는 그 집에까지 가서 문을 두드리고 야료를 놓았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로 C주에서 올라오는 그때의 친구를 만나면 말 끝에 H의 이야기가 의례히 나왔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에 내가 C주를 내려갔을 때에도 친구들은 술좌석을 벌이고 H를 일부러 불러주었다. 그러나 H의 행동은 전해나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조금 성격상으로 우울한 것이 분명히 보이는 듯할 뿐이었다.
H와의 관계는 다만 이것뿐이었으므로 나는 K 군의 묻는 말에 서슴지 않고,
“H 말이오? 알고말고요. 이새 잘 있나요?”
하고 반문을 하였다.

저자소개

1895년 5월 12일 ~ 1935년 4월 19일.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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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보금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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