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질렀다고 깨달은 순간 숙경은 현의 뺨을 찰싹 후려갈기고 말았다. 순간의 발작이었다. 아니 착각이었다. 만일에 때린다면 현이 숙경이를 때렸어야 할 것이었다. 선손을 건 것도 숙경이었다. 오늘 현한테 그럴 의사가 없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숙경이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 오늘뿐이 아니라, 현은 그런 생각을 감히 품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현이 숙경을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살뜰히 사랑한다. 숙경이가 만일에 사랑의 대가로서 현이 가지고 있는 일체를 요구했대도 감격해서 바쳤을 현이었다. 이 사랑의 대가란 반드시 숙경의 전부를 의미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단 한 번의 키스를 위해서 숙경이가 현한테 그의 생명의 일부를 요구했대도 기뻐서 응했을 현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명예라도 좋았고, 사회적 지위라도 좋았다. 결핵균의 최고 권위요 국립 결핵 연구원장이란다면 값싼 지위도 아니다. 그 일부나 또는 전부와 숙경의 사랑과를 바꿀 수 있다면 언제든지 헌신짝처럼 버리고 숙경의 사랑을 독점했을 현이기도 했다.
이 단 한 번의 키스가 숙경의 애정의 전부 ─ 육체까지를 의미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것이 설사 키스에서 그치는 애정이라는 것을 알았었대도 기뻐서 자기를 바쳤을 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숙경에게 대한 현의 사랑은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한 사랑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애정이었다. 별을 그리는 철없는 소녀의 하염없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 현이 감히 숙경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리가 없다. 현한테 먼저 손을 내어 준 것은 숙경이었다. 현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 받듯 숙경의 손을 받았었다. 손바닥에 놓여진 그 숙경의 손을 현은 그저 바라다보기만 했었다. 감히 쥐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현은 숙경의 의사를 몰랐다. 숙경의 열이 삼십팔도가 넘었을 때였던지라. 열 때문에 그러는 것이려니 했을 뿐이었다. 마침 객혈을 한 뒤이기도 했다. 생명에 대한 위협의 공포가 의사 인 자기한테 구원을 청하는 것이거니 했을 뿐이다.
"선생님, 나 좀 살려주세요!"
이런 애원으로만 해석했었다. 그래서 현은 보고만 있었다. 으 스러지도록 쥐어보고 싶은 손이었다. 말라서 그렇지 여자로서는 큰 편에 속하는 숙경이다. 그러면서도 손과 발은 조그마했다. 정말 귀엽게 생긴 손이었다. 꿈에라도 한 번 만져보고 싶어하던 손이기도 했다. 그 손을 만져볼 용기를 못낸 현이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