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젓한 성명을 가졌건만 누가 어째서 지은지도 모르는 별명이 본명보다도 더 유명한 사람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한둘씩은 으레껏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별명이란 대개 흉허물없는 사이거나 희영수를 할 때나 씌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굉장 씨는 특별한 관계나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의 본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정도다. 상·하동 삼백여 호에 굉장으로 통할 뿐만 아니라 삼십리나 떨어져 있는 신읍에서도 구읍(舊邑) 박굉장이라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군수고 서장이고 세무서며 조합, 우편국, 소위 관공서 직원 쳐놓고는 구읍 박굉장 댁에를 안 와본 사람이 없으니까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마는 읍내의 웬만한 상점 치부책에도 그는 박굉장으로 적혀 있다. 개중에는 굉장을 본명으로나 아호로 알고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만큼 그의 별명은 보편화해버렸다. 여기에는 그 자신이 굉장이란 별명을 시인한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 자신은 차치하고 가족들까지도 “굉장 댁, 굉장 댁”하고 자기 집을 부르는 일까지도 있는 터다.
굉장 씨의 본명이 무엇인가는 알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그의 별명이 어떻게 해서 생겼던가만 알면 족할 것이다. 대개는 그가 말끝마다 ‘굉장’ 소리를 그야말로 굉장히 해서 굉장 댁이 된 모양으로 알지만(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그의 집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말버릇도 말버릇이지만 그는 본래 굉장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장 집물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몸에 지니는 단장이며 골통대, 심지어 주머니칼까지도 굉장히 부대한 것을 즐긴다. 쇠푼이나 있던 시절의 일이지만 해변으로 통하는 자동차 선로 허가를 맡아가지고 이 구읍으로 낙향을 하더니 멀쩡한 집을 헐어젖히고 가역을 시작했다. 들보는 강원도로, 주추는 서울로, 기와는 수원으로, 미장이는 전라도에서…
이렇게 법석을 댔다. 노인 부모에 친정살이를 하는 딸 모자밖에 없는 단출한 가솔에 삼십여 칸의 그야말로 굉장한 집이다. 사랑채는 부연도 달고 유리분합을 들이고 등나무도 올리고 연못을 파고 석산을 모으고 했다.
집이 덩그라니 완성되어갈 무렵 ― 어떤 날 굉장 씨는 서울 가는 버스 속에서 멀리 들여다보이는 자기 집을 옆 사람한테 가리키며,
“거 뉘 댁인지 참 굉장하게 짓는군. 누군지 거 굉장한 사람인 모양이지요.”
이래서 생긴 ‘굉장’이다. 애들처럼 뻐기고 싶어하는 것이 그의 천성이다. 풍도 치나 희떱기도 하다. 헙헙한 데도 있어 어떤 편이냐면 호인이다.
쥐가 오줌독에 빠져죽은 조그만 사건도 그는 굉장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는 설명을 못한다. 풍치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이 말을 해도 몹시 부퍼서 정말 큰 사건을 설명할 때는 말주변은 없는데다가 성미는 급해놓아서 거품만 부걱거린다. 그러고는 그저 굉장 소리만 연성 늘어놓는 것이었다.
― 이 굉장 씨가 정말 굉장한 사건을 맨 처음으로 알았으니 동네가 뒤집힐 밖에 없다. 일본 천황이 항복을 했고, 그보다 더 굉장한 사건은 조선이 독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