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쩌면 그래, 인제서야 올까… 남의 눈이 빠지게 기다리게 해놓고…
그래, 지금이 열시우? 내 참, 그래두 열한시든 열두시든 오기나 했으니 장허시우. 난 또 접때처럼 고랑떼를 먹이는 줄 알고 이때껏 혼자서 안달바가질 했지…
뭣이라고? 저 하는 소리 좀 봐… 어디 다시 한마디 해봐요? 어쩌면… 너무 그렇게 사람의 맘을 몰라주시다간 괜히 죄받아요. 아우님두, 어쩌면 장난의 말이라두 그렇게 한담!
아우님이야 나 같은 것 아니고도 친구도 있고 말벗도 있고 또 고국에 돌아가시면 정말 친누님도 계시고 하겠으니까, “그까짓 것!”하고 발 새에 때꼽만치도 날 생각하지 않겠지만서두 참 난 안 그렇다우! 내야 아버지가 계시는 것두 아니구 어머니가 계시는 것두 아니구… 이 넓은 세상과 그 많은 인총에 나란 계집과 촌수 닿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구려. 그런데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땅에 와서 고국 사람들의 얼굴까지 그리고 사는 내가 어쩌자고 아우님을 소홀히 생각하겠수?
난 정말이유. 아우님하고 의남매를 맺은 지도 벌써 석 달이나 되건만 난 한 번두 아우님을 의동생이거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내 동생이거니… 피를 나눈 동생이거니… 했지요. 동생이란 것두 아우님이 나보다 나이 십 년이나 차이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이지 만약 아우님의 나이가 나보다 단 한 살이라도 맏이 된다면 난 오라버님 대우를 깍듯이 했겠으리다.
다섯 해만 맏이라도 나는 아저씨처럼… 아버지처럼 받들었을 게야요.
그야 아우님으로 본다면 제까짓 것이 끽해야 기생노릇하던 계집이요, 지금이라야 찻집 마담으로 돈에만 눈이 빨개진 계집이거니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노릇을 한 것두 벌써 십 년 전 이야기고 또 아우님이야 그것을 안 믿어주겠지만 그런 노릇을 했다 쳐도 아우님한테 누님이라고 불려진대도 조금도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한 기억은 없다우…
그야 나두 아우. 그야말로 열다섯 살 적부터 삼십까지나 뭇남자들한테 치여난 나요. 요새 십 년간에 그야말로 전세계 종족 틈에 끼여서 살아온 내가 아우님이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한 것쯤야 눈치 못 차릴 수야 없죠. 하지만 장난의 말이라두 어쩌면 그렇게 섭섭하게 한다우. 나두 아우님이 또 날 놀리느라고 그러거니 생각을 하면서도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는다면 저런 말이 나올 리가 있을라구 ─ ’하고 생각이 든다우. 그런 때는 그냥 하늘이 쾅 하고 내려앉는 것 같구려…
그래, 말 잘했수. 이젠 장난의 말이래두 아예 그런 섭섭한 소릴랑 마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