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모든 것은 끝났는가 봅니다. 이후부터는 당신도 나를‘부양’(당신 말씀대로)할 의무가 없어졌고 나도 당신의 부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무거운 짐을 벗었는가 합니다. 당신도 후련하시겠지마는 나도 아주 홀가분합니다.
그렇습니다, O씨. 이 순간부터의 나는 당신의 아내도 아니요, 경남이와 경희 두 남매의 어미도 아닙니다. 따라서 당신도 박선희의 의사를 남편이라는 귄위로써 좌우하실 수 없으시게 된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벌써 당신의 아내가 아닌 나이고 보니 당신이 나의 뜻을 무시한 그 어떤 명령에도 좇지 않아도 좋게 된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고해 같은 인생의 반려로서 손을 맞잡기 전인 그 옛날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으니까요 ─ 아니 A박사의 소개로 당신과 내가 백합원이라든가 하는 양식집에서 그 소위 맞선을 보기 전이란다면 당신과 나는 또 그 어떤 인연으로 만나서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고 해볼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마는 오늘 이렇게 헤어진 다음에는 다시는 그런 기적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당신도 나도 어린아이가 아닌 바에야 한 번 불에 데어보고도 다시 불장난을 하겠습니까? 당신과의 부부생활이란다면 나도 이에서 신물이 나지마는 나처럼 되양되양한 계집의 남편 노릇이란다면 당신도 되풀이하고 싶어하지는 않으실 것을 잘 나도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