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예술을 좋아한다는, “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 어딘가를 움직이는 작품”을 좋아한다는 그는 자신의 말과 꼭 닮은 소설을 쓴다.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말을 하고,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하거나 침묵해야 할 순간에 말하고, 타인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 안에 고요히 들어간다.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 판단하려 들지 않는, 무엇 하나 온전히 믿거나 이해할 수 없게끔 거리를 두는 그의 소설은 외려 그 거리감을 통해 읽는 이의 가장 내밀한 곳을 건드린다. 내 것이 아닌 척 꽁꽁 숨겨두고만 싶었던 치부와 욕망을 들추는 이야기는 일상의 매끄럽고 섬세한 표면에 균열을 내고 마침내 그 세계를 깨뜨리며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그의 작품 여덟 편이 첫 소설집 『은의 세계』로 묶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