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한강 철교에 들어섰을 때가 정각 여덟시 오분 전이었으니까 틀림없는 정각인데 내려보니 학생들은 간데가 없다. 혹시 시계가 쉬지나 않았나 싶어 귀에다 대어보기도 했으나 째깍째깍 영락없이 잘 간다. 그래도 의심할 것은 시계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지금 대학생들이라 하지마는 명색이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을 하이킹 가자고 끌어내어놓고 단 한 녀석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달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태수는 버스를 기다리는 자기 나이가 되었음직한 중년 사나이를 골라서 자기 시계와 맞추어도 보았으나 여덟시는 정녕코 여덟시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자기 눈을 또 의심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도 있었거니와 과거에는 중학교 교사를 십 년, 해방 후에는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 반생을 훈육 사업에 바쳐오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게 아주 몸에 배어버린 교양이란 놈이 언제나 잘못은 남에게보다 자기한테 돌려버리는 버릇이 생기어져 있는 것이다.
태수는 한참이나 뒤지어서 학생 녀석들의 편지를 양복 뒷주머니에서 찾아내었다.
편지라야 찻집 메모 쪽지에 필경 그 집 카운터에서 쓰는 연필을 빌려 적었으리라 싶은 간단한 하이킹에의 초청장이다. 아니 그것은 초청장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명령서라고 하고 싶을 만큼 명색이 은사라는 사람한테 하는 편지치고는 소홀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녀석들이 차를 마시다가 우연히 생각이 난 김에 그 자리에서 찍찍 갈겨 보낸 것이거니 생각하면 그런 형식이 될 수도 있으리라 너그러이 생각할 만한 아량을 갖고 있는 태수이기도 하다. 그런 태수의 사람됨을 아는 데서, 아니 믿는 데서 그런 소홀한 편지도 씌어진 것이었지만 우연히 몇이 모였다가 선생님을 모시고 하이킹을 하기로 결의했으니 명 일요일 오전 여덟시 정각 노량진 종점까지 와주셨으면 한다는 끝에 ‘결의’한다는 세 학생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그런 쪽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