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있어도 빨래방에 가는 이유.
그곳이 품고 있는, 상처 받은 이들의 이야기.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관계'의 문제를 톡톡 튀는 문장과 무겁지 않은 서사로 경쾌하게 그려낸, 작가 김희진의 장편소설. 『옷의 시간들』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별의 문제, 그로 인한 아픔과 상처, 새로운 만남과 위로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이다. 작가는 빨래방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만남과 소통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통해 반복되는 우리 삶의 이별과 만남을 밝고 명랑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오주는 쉬지 않고 자신을 찾아오는 헤어짐에 지칠 대로 지쳤다. 가족이 떠났고, 남자친구도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가 되어 다시는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쯤,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존재들이 찾아 든다.
뭐든 수집한다며 이것저것 사진기를 들이대는 앞집 여자 조미정, 늘 소시지를 물고 있고 껄렁해 보이지만 한때는 잘나가던 카피라이터였다던 만화가 조미치, 대학교수까지 지냈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거리를 떠도는 콧수염 아저씨 등. 오주는 엉뚱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되찾고,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책에서 제시하는 빨래방은 과거 아낙네들의 빨래터와 같이 기능한다. 빨래방을 찾는 이들은 옷을 세탁하는 것과 함께 자신의 마음 또한 함께 치유 받는 과정을 경험한다. 작가는 이와 같이 빨래방을 위로와 소통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이별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아픈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게 되는 삶의 순환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