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사과받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노래”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자들의 삶과 그들의 인권문제를 선구적으로 다룬 『코끼리』의 작가 김재영의 신작 소설집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이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삶터가 무너지고 생존을 위협받는 보다 확장된 의미로서의 ‘이주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마땅히 사과받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은 방치된 이웃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 환부를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우주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별에 빗대어 “폭발한 별들의 잔해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남겨졌듯이” “이웃들의 심장이 타버려 생겨난” 상처들도 쉽게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낭만적 상상력은 참담한 오늘을 견디게 하는 위로의 메시지이다.
“세상 모든 것이 반짝여야 할 필요는 없잖아?”
소멸하는 별처럼 빛을 잃어가는 우리 존재를 위로하는 가장 낭만적인 문학적 상상력!
『코끼리』와 『폭식』에서 ‘신화적?원형적 상징’을 통해 파괴된 현실 세계에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해온 작가의 작품 세계는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에서도 계승, 발전되고 있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는 천문학적 현상을 통한 우주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표제작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에서 주인공 ‘미래’는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 ‘우주’로부터 우주의 9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세상도 재벌이나 권력자, 유명인이 아니라 암흑물질처럼 평범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재개발로 인한 철거에 반대하던 마을 사람들이 의문의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미래는 함께 사과파이를 먹으며 우주가 말한 “찻숟가락 하나분의 무게가 보통 산 하나의 무게와 맞먹는다”는 중성자별에 대해 떠올린다.
미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중성자 덩어리가, 작년 겨울에 알고 지냈던 이웃들의 타버린 심장에서 생겨난 덩어리가 허공에 떠 있다. 작지만 무거운 그 덩어리를 찻숟가락 위에 올려놓는다. 덩어리는 금세 찻숟가락을 뚫고 밑으로 빠져버린다. 땅 밑으로, 땅 밑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간다.
그들 존재도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잊혀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중성자 덩어리는 지구 반대편의 도시 위로 튀어 오른다.
_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37쪽.
[무지갯빛 소리]의 주인공 ‘수연’ 역시 대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에 쫓기다 의문의 실족사를 당한 연인을 잊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공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정성을 쏟았던 온갖 일들이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는 철학자 하위헌스의 말을 떠올린다.
이처럼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에서 우주적 상상력은 소중하게 다뤄져야 할 가치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기능을 하는 동시에, ‘오늘의 힘듦’을 견디게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